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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비 덜썼으니 분담금 줄이자”/미­재정지원국사이 전비시비의 배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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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선 “인명 희생했는데 우방들 인색”푸념
걸프전이 예상했던 것보다 조기에 매듭돼 갹출키로 했던 전비가 채 사용되지 않게됨에 따라 분담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 재정지원국 사이에 알력이 노출되고 있다.
당초 걸프전이 최소한 3월말까지는 계속되리라는 판단에서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를 포함해 일본·독일·한국 등 재정지원국들은 모두 5백45억달러를 지원키로 미국에 약속했다.
그러나 전쟁이 예상했던 것보다 1개월 이상 일찍 끝나자 자연히 전쟁비용이 절약되게 되었으며 전쟁을 실제 벌이던 때와 분위기도 많이 달라져 미국과 재정지원국 사이에 이해가 엇갈리게 되었다.
우선 지원국들이 약속한 돈을 내놓기를 계속 늦추고 있다. 2차 분담금 마감일인 3월말을 10여일 남겨 놓은 20일 현재 2백56억달러만 걷혀 지원금 지불이 45%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미 의회가 집계한 각국별 현황을 보면 ▲사우디 1백68억달러 약속에 61억달러를 지불 ▲쿠웨이트 1백60억달러에 55억달러 ▲아랍에미리트연합 40억달러에 20억달러 ▲독일 66억달러에 46억달러 ▲일본 1백7억달러에 73억달러 ▲한국 3억8천5백만달러 약속에 7천1백만달러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 독일같은 경우는 야당인 사민당에서 전쟁이 일찍 끝나 비용이 예상보다 적게 들었으니 이제 더이상 돈을 내서는 안된다고 주장해 정부가 분담금 재조정을 위한 사절단을 워싱턴으로 곧 보낼 예정이다.
독일 사민당은 미국이 우방국으로부터 약 6백억달러를 거두기로 되어 있는데 실제 전쟁비용은 4백20억달러 밖에 안들어 미국이 전쟁으로 막대한 이득을 취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따라서 독일정부는 더이상의 지불을 중지하고 나머지 돈은 국민의 세금을 덜 거두는데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가 독일정부의 공식견해는 아니어서 미 행정부가 아직 나서지는 않고 있으나 미 의회가 발끈했다.
미 상원 본회의는 19일 걸프전비로 4백26억달러를 승인했다.
그러나 이중 미 납세자부담 부분은 1백50억달러고 나머지는 외국기여금의 충당을 예상하고 있다.
미 의회는 이 세출법안속에 재정지원국이 약속한 부담금을 모두 내지 않을 경우 이 나라에는 미국제 무기를 팔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즉 사우디를 포함한 아랍국가들에 경비지불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로버트 버드 상원 세출위원장은 『미국이 많은 젊은이를 희생시켜 가며 안보를 지켜 주었는데 이제 와서 재정부담까지 떠맡으라니 참을 수 없다』며 법안제출 이유를 설명했다.
독일이 재정부담에 이의를 제기한데 대해서도 이날 열린 하원 외무위 청문회에서 의원들은 『각 나라가 약속했던 금액을 모두 받아 낼 수 있느냐』는 다그침과 함께 미국은 인명을 희생하기까지 했는데 우방들이 너무 인색하다는 주장을 폈다.
이날 백악관·국무부·국방부의 정례브리핑에도 전비분담금이 화제가 됐다.
미국은 아직 이 문제를 정부차원에서 거론할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인지 의회차원의 압력효과를 기다리는 듯 보인다.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은 『약속을 한 국가중에 이를 지키지 못하겠다고 나선 나라는 없다』면서 거둔 돈이 남는다는 주장에 대해 『우리는 결코 전쟁으로 이익을 볼 생각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피트 윌리엄스 국방부 대변인은 전비가 남아돈다는 주장에 대해 『비록 포화는 멈췄다 하더라도 비용이 들어갈 곳은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이 시점에서 아무도 정확한 비용을 계산해 낼 수 없다』며 미국 스스로도 계산을 못해 추가예산 신청을 해놓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따라서 미국이 합리적인 경비설명을 하지 못하는 한 이 문제는 앞으로 계속 불씨로 남을 전망이며,이를 잘못 다루었다가는 전쟁에서 이기고 오히려 미국이 치사한 나라로 인심을 잃을 소지도 있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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