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크리스마스' 예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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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19일 저녁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리치먼드 대학 구내 캐논 메모리얼 채플에서는 통상적인 크리스마스 풍경과는 다소 다른 예배가 열렸다. 크리스마스 캐럴이나 즐거운 분위기는 찾아 볼 수 없고 우울한 멜로디의 피아노 연주가 울려 퍼졌다.

교회 곳곳에는 빨간색이나 금색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 대신 슬픔을 상징하는 파란색 천이 걸렸다. 초록색 나무 장식 대신 죽은 나뭇가지가 배치됐다. 예배 중간에는 60여 명의 참석자들이 서로 부둥켜 안고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종교에 관계 없이 누구나 와서 참석할 수 있는 '블루 크리스마스' 예배 현장이다.

가족을 잃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한 '블루 크리스마스' 예배가 미국에서 새로운 풍속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AP통신이 19일 보도했다. 블루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는 교회들은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동짓날 저녁에 주로 이 예배를 드린다. 올해 동지는 한국 시간으로 22일이다.

블루 크리스마스 예배는 사랑하는 이를 사별이나 이혼 등으로 잃고 갑자기 생긴 빈 자리를 견디기 어려워 고통받는 '빈 의자 신드롬'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한때 카운슬러로 일하기도 했던 리치먼드대 교회 케이트 오드와이어 랜들 목사는 "이 예배가 전통적인 형태는 아니지만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연말연시에 가족의 빈 자리 때문에 슬퍼하는 이들에게 다소 위안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10년 이상 블루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고 있는 매사추세츠주 노스보로의 트리니티 교회 담임 목사인 신시아 메이벡은 "떠들썩한 연말 분위기에 가족을 잃고 상심하는 이들의 슬픔은 더 커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메이벡 목사는 19일 예배에서 추위와 암흑을 뚫고 예수를 찾아간 동방박사 세 명의 이야기를 주제로 슬픔으로 고통받는 신자들을 위로했다.

올 5월 암으로 부인을 잃은 찰스 민스터 주니어(77)는 "저승의 아내가 더욱 그리운 크리스마스가 너무 싫다"며 "이런 예배에 참석해 다소 위안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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