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K를 위한 반 TK론(권영빈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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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구 경북고의 재경 동창회가 최근 『경맥』이라는 회보지를 펴냈다. 여기에 실린 한양대 사회학과 권오훈 교수의 『TK론의 실상과 허상』이라는 글은 매우 흥미롭다.
권교수 자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회적 힘의 집단체」로서 부상한 TK의 동문으로서 때로는 자랑스러움과 때로는 부끄러움을 함께 느끼면서 TK의 실상과 허상을 이렇게 적고 있다.
무엇이 TK인가. 경북·대구 출신이라는 지역적 연고성과 대구 경북고 출신이라는 학연성이 가미된 파워 엘리트 집단이다.
어떻게 형성되었나. ①급격한 산업화과정에서 생겨난 1차적 지역집단이기주의 산물이고 ②정치관료적 출세지향이 강한 경북지역의 학문전통을 배경으로 해서 ③30년간의 군사정치속에서 그들이 내민 지팡이 끝을 잡고서 형성된 세력이다.
그러나 민주화와 사회발전을 위해선 첫째,법·규율·이성에 바탕한 2차적 집단이 모든 사회조직의 주류가 되어야 하고 둘째,그러할때 사회조직은 다양한 개성을 지닌 여러 조직들로 구성되어 TK 또한 정치 관료사회뿐만 아니라 학문 예술세계에로의 균형있는 확산을 시도해야 할 것이며 셋째,군대라는 집단의 도움없이 홀로 설 수 있는 TK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결론짓고 있다.
필자 또한 별볼일 없는 TK의 한사람으로서 권교수의 지적에 동의한다. 뿐더러 여기에 두가지 측면에서 사족을 덧붙이고 싶다.
국가권력의 핵심이 소수의 특정집단이나 세력에 편중되어 있다는 인상이 사회적 공감대로 받아들여질 때 두가지 반작용이 예상된다.
하나는 권력내부의 반작용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구성체내부의 거부반응이다.
어떤 사회,어떤 체제에서든 파워 엘리트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 존재방식은 독자성과 균형위에서 성립되어야 한다. 균형과 독자성이 깨어지면 특정집단의 독주로 흐르고,그 독주는 타세력의 거센 반발을 사며,그 반발을 막기위해 특정집단은 한층 더 결속과 흡인력을 강화하며 강한 배타성을 보이게 된다. 이것이 권력 내부에서 악순환되는 반작용이다.
집권후기로 들어선 6공 권력구조가 체제유지의 핵심이랄 수 밖에 없는 청와대·검찰·안기부 위주로 짜여져 있고 그 수뇌가 TK출신에 의해 내부적 결속력·흡인력과 외부적 배타성을 동시에 발휘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6공 현재의 파워 엘리트집단이 특정집단에 의해 주도되고 그 주도의 배경이 독자적 능력보다는 지난날 억압체제의 지팡이 끝을 잡고 일어선 세력이라면,또 민주화 과정이란 지난 억압체제의 청산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면 오늘의 TK위상 또한 부정적 모습으로 그려질 수 밖에 없다.
SK(서울·경기) JK(전남·광주)의 강한 반발을 살 수 밖에 없고 민주화를 역행하는 걸림돌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게된다.
핵심적 권력구조가 TK 또는 신TK,공안파 또는 개혁파에 의해 독자성과 균형을 잃고 주도되고 통합되면 경직할 수 밖에 없게된다.
수서파동에서 본 정치적 위기란 표면상의 도덕성 위기도 있겠지만 내부 권력구조의 독주와 그에 따른 경직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대통령을 포함한 그밑의 권력구조가 특정집단에 의해 주도된다면 설령 사건과 무관한 관계에 있었다해도 의혹과 불신은 증폭되게 마련이다.
권력이란 언제나 위기를 맞게된다. 그 위기를 소멸시키고 축소시키기 위해 권력의 장치에는 언제나 피뢰침 기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권력의 독점보다는 분산으로,제기능 제역할을 챙기고 추진하는 직업적 관료집단에 의해 독자적 분권기능이 존재한다. 벼락이 치면 벼락을 소멸시키는 피뢰침이 도처에 있어야 한다.
피뢰침 장치없이 대통령이 배타적 특정집단에 의해 보좌되고 정책을 결정하며 한가지 목적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인상이 짙어질때,수서사건 같은 벼락이 치면 권력의 핵심 전체가 벼락을 피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리게 된다.
그다음,수서사건이 일과성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끈질긴 의혹으로 남는데는 30년 세월동안 우리 사회에서도 이미 정·경·군 복합의 상류층사회가 형성되어 있고 그 사회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특정 파워 엘리트집단이 있다는 심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분명한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의혹과 심증이 무성한 것은 특정집단 지배의 권력구조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또는 반작용에서 나온 것이라고 풀이해야 할 것이다.
30년간 권위주의 정치와 고도성장의 산업화속에서 우리 사회내부에도 배타적 상류층 사회가 자리잡고 있고 개인의 능력이나 노력과는 관계없이 특정집단이나 특정계층에 의해 이 사회가 주도되고 움직여 나간다고보는 시각이 늘어난다면 이런 사회야말로 닫힌 사회가 될 수 밖에 없다.
베일에 싸여있는 권력의 실체란 실재보다 허장성세일 수 있고 왜곡 오인될 수도 있다. 다만 문제는 실체와 달리 더 크게 더 과장되게 사회적 인식이 확산된다는데 있다.
진실로 TK가 이런 의혹과 심증을 일소하고 왜곡과 오인을 바로 잡기위해선 배타성 보다는 포용성을,독점 독주 보다는 상호성과 균형을 중시하는 파워 엘리트 집단의 일부로 기능해야 할 것이며 그 기능에 자족해야할 것이다.
이 길이 권위주의 시대를 청산하고 열린 사회로 나가는 민주화과정에서 TK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을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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