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서슬에 선거위축 우려/선관위·검찰 단속 위력발휘 좋으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유권자들 후보자 알 기회 너무 제약
내 마을 일꾼을 뽑는 시·군·구의회 의원선거가 선거공고 6일이 경과한 13일까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이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다.
후보등록률도 일부에서는 2만여명이 입후보,5대 1의 경쟁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으나 마감을 하루 앞둔 12일까지 등록자는 8천5백29명으로 의원정수 4천3백4명의 2배도 채 안되고 있으며 13일에 대거 몰린다 하더라도 3대 1을 약간 웃도는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후보등록의 저조와 선거운동침체 등은 정치에 대한 보편화된 불신감이 주원인이지만 선거집행,감시기관의 엄격한 법적용과도 무관하지 않다.
노태우 대통령이 13일 『선거사범을 범죄와의 전쟁 차원에서 단속하라』고 지시한 것에 때맞추어 대검도 「선거운동금지 1백개 사항」을 시달,집중단속에 나서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윤관 위원장도 지난 8일 대국민 담화문에서 『법을 잘 지키는 것이 공명선거의 요체』라면서 『실패와 퇴영의 역사가 되폴이되지 않도록 이번에는 반드시 공명선거를 이루어내야 한다』고 공명선거 실천의지를 누누이 강조했다.
선관위는 지난 연말부터 12일까지 탈법·불법선거운동 1백91건을 적발,이중 11명은 고발,8명은 수사의뢰했고 1백17명은 경고,55명에 대해서는 주의·시정조치를 하는 등 유례없는 단속실적을 보이고 있다.
선관위와 검찰의 시퍼런 서슬과 일반국민의 방관속에 평민·민주당이 수서규탄집회를 유보·취소하는 등 공명선거분위기가 어느 정도 잡혀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궁극적으로 후보자들의 지나친 활동위축현상을 조장하고 있지 않느냐는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더구나 현행 선거법이 여야의 정치적 줄다리기 속에 다소 기형적으로 만들어져 이현령 비현령의 모호한 조항이 많은데도 선관위는 법조문을 유추 내지 확대해석하는 경향까지 보여 후보자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선관위는 정당의 개입 배제원칙을 적용,야당의 순회집회·후보조정 등 내부공천에도 제동을 걸었고 이것이 여론의 호응을 받자 아예 각 정당에 있는 선거대책기구도 폐쇄토록 요청할 것을 검토중이다.
선관위로서는 정치논리보다는 법정신을 존중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선관위는 1월16일 이후로는 가장 경미한 조치인 주의·시정을 아예 없애고 위반사례가 적발될 때마다 고발·수사의뢰·경고하는 등 강경제재로 전환했다.
현행 선거법상 선거운동방법은 선거벽보·선거공보·소형인쇄물·현수막·합동연설회 등 다섯가지 뿐이며 그나마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직접 접하고 자질과 정견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는 20분씩의 합동연설회 2회밖에 없다.
선거운동은 선거법에 규정된 방법으로밖에 할 수 없다는 선거운동 열거주의(법40조)에 근거,선거기간중 입당권유행위와 정당원 상호간의 가정방문도 금지됐으며 국회의원의 귀향보고회와 당보의 가두배포·게시도 위법으로 선관위측은 유권해석했다.
선관위가 정당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것은 그렇다치고 공명선거운동에 대해서까지 지나치게 확대해석,건전한 시민단체의 활동을 제약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선관위는 사회단체가 공명선거 추진활동을 하면서 ▲후보자를 내서는 안되며 ▲특정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추천·반대하거나 유도해서도 안되고 ▲위법행위자를 고발할때는 무고한 피해자가 없도록 하며 ▲거명·공표하여 배격운동을 할 수 없고 ▲후보자를 초청,공개토론회나 심포지엄 등도 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따라서 시민단체의 공명선거활동은 『관권이 개입되서는 안된다』『금권·타락선거를 막자』는 등 일반적인 구호수준에 머무를 수 밖에 없으며 구체적인 감시활동은 원천적으로 봉쇄된 셈이다.
결국 후보자가 유권자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극히 제한된데다 공명선거활동도 제한된 테두리안에서만 가능하도록 굴레를 씌운 것이 현행 선거법이다.
공명선거를 실시하면서도 유권자가 유능하고 사심없는 일꾼을 가려낼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 선거관리기구의 기본 소임임을 생각하면 선관위의 법해석과 집행에 시비를 거는 것도 납득할 만하다.
지나치게 엄격한 법적용은 자칫 모든 후보자와 유권자를 범법자로 만들 소지가 있으며 선거관리가 아닌 선거규제가 될 우려도 있다.<김두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