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업 노트] '좋은 음식 싸게 서비스' 1000원 옹고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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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1992년 서울 대학로에 김밥집이 하나 문을 열었다. 당시 라면과 김밥은 비좁고 허름한 곳에서 많이 팔았지만 이 김밥집은 주방을 쇼윈도 앞에 설치하고 깔끔하게 내부를 단장해 동네 명물이 됐다. 서너 가지 속재료를 넣은 김밥 두세 종류를 파는 다른 가게와 달리 아홉 가지 재료로 7~8가지 김밥을 내놓았다. 손님들이 줄을 서고 가맹점 문의가 잇따르자 주인은 94년 프랜차이즈로 사업을 확대했다. 국내 김밥 프랜차이즈의 원조인 '김가네'의 사업 초기 스토리다.

하지만 가게 하나를 하는 것과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시행착오가 적잖았다. 당시까지만 해도 프랜차이즈라는 사업 형태는 낯설었다. 사업 모델이나 시스템을 배울 곳이 없었다. 김용만(50.사진) 사장 부부는 낮에 직영점 영업을 하고 밤에 프랜차이즈 업무를 했다. 밤 12시 넘어서까지 가맹점의 재료 주문을 받고 새벽 시장에 나가 장을 봤다.

가맹점은 늘어났지만 남는지 밑지는 지 따져볼 겨를도 없었다고 한다. 50여 개 가맹점을 확보한 뒤에야 김 시장은 정식으로 회사 형태를 갖췄다. 96년엔 같은 이름을 사용한 유사상표가 등장했다. 또 회사가 잘된다는 소문이 나자 세무조사도 들어왔다. 직영점 한 곳을 팔아 세금을 내야 했다. 골머리를 썩이는 가맹점도 속출했다. 물가가 올라도 김밥값을 올리지 않자 본사에서 공급한 재료를 쓰지 않고 질 낮은 재료로 김밥을 만들어 파는 곳이 생겼다. 1000원짜리 김밥을 팔아서는 유지가 안 된다며 본사 직원들까지 가격을 올려야 한다고 아우성이었다. 김 사장은 그러나 원칙을 지키기로 했다. '좋은 음식을 싸게 파는 게 장기적으로 회사와 가맹점이 함께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김가네는 현재 전국에 모두 430개의 가맹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가맹점 매출만 700억원에 이른다. 김 사장은 "돈을 번 만큼 운영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투자한다"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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