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열며

정부부터 서비스 정신 보여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지난주 정부가 발표한 '서비스 산업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은 이를 위한 청사진인 셈이다. 한두 곳도 아닌 21개 부처가 4개월간 머리를 맞대 심혈을 기울였다 하니 그 의욕과 열의를 짐작할 만하다. 계획대로 이뤄져 한국이 세계적인 서비스 산업 강국이 된다면 오죽 좋겠나.

여기서 순진한 질문 하나 던져 보자. 특정 산업의 경쟁력이 약하다고 정부가 도와줘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일인지.

물론 서비스 수지 적자가 갈수록 커지는 데 대한 위기감은 누구나 느끼고 있다. 또 서비스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모두 공감한다. 문제는 주장과 생각은 같지만 해답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이럴 땐 보통 정부가 나서서 뭔가 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기 쉽다. 평소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사람이 그런 이율배반적인 논리에 동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가 무슨 도깨비 방망이인가. 정부의 손길이 닿으면 무엇이든 된다고 보면 큰 오산이다. 정부가 밑그림을 그리고 이에 따라 자원을 분배하면서 특정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을 산업정책이라고 한다. 1960~70년대 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개발의 초기 단계에서 고속성장을 이루는 데는 효과적이다. 그러다 경제의 규모와 시장의 힘이 커질수록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은 먹혀들기 어려워진다. 과문한 때문인지 서비스 산업 경쟁력이 강한 미국에서 정부가 날 잡아 종합대책을 발표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정부가 특정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해 주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 산업정책의 주무 부처였던 산업자원부의 위상 변화를 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과거엔 힘깨나 쓰던 부처였지만 요즘엔 큰 일을 할 기회가 별로 없지 않은가.

대책을 발표한 재정경제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나름대로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다. 종합대책이 잡다하게 만들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대책 하나하나에는 일리가 있으나 모아 놓고 보면 마치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은 사진 같다. 이것저것 끌어 모으긴 했지만 핵심이 규제 완화인지, 지원인지, 구조조정인지 확실치 않다.

사실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정부가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잡다한 대책을 마련하는 데 들인 노력과 시간을 그동안 해오던 규제 개혁에 집중하는 게 오히려 나았을 수도 있다. 산업정책의 향수에 젖어 자꾸 나서기보다 민간에 길을 비켜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서비스 분야의 규제를 대대적으로 없애주라는 것이다. 진부하게 들리지만 이게 바로 정답 아닐까.

그동안 정부의 규제 완화엔 '규제를 조금 완화해 계속 규제하겠다'는 뜻이 담긴 경우가 종종 있었다. 특히 인허가권을 하부로 위임하거나, 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꾸는 식의 규제 완화가 그렇다. 장관은 대세에 지장이 없으면 결단을 내려주기라도 하지만, 고지식한 실무자는 그게 어렵다. 규정대로, 법대로다. 형식적으론 규제 완화이지만 결과적으론 '규제의 재정의'다.

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꿔주면서 규제를 완화했다고 생색 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담당 공무원이 마음만 먹으면 기업에 신고를 아예 못하도록 할 수 있다. 과거 기술도입 신고제가 그런 식으로 운용돼 몇몇 기업이 애를 먹지 않았던가.

지금 켜켜이 쌓여 있는 규제는 과거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이 남긴 퇴적물일 수도 있다. 이를 걷어내겠다는 정부의 서비스 정신이 없으면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은 높아지기 어렵다. 내년에 부처별로 내놓을 세부 계획은 무엇을 할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에 초점이 맞춰지길 기대한다.

남윤호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