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황진이' 중국에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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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북 작가의 소설이 최초로 한국 출판사와 판권 중개업체를 통해 해외에 진출한다. 북 작가 홍석중(65)의 소설 '황진이'의 대외판권을 관리하고 있는 출판사 대훈닷컴과 판권 중개업체 임프리마 코리아는 15일 "중국 역림출판사, 대만 맥전출판사와 판권 수출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는 해외 교류가 끊어진 북한의 문학 작품이 우리나라를 통해 해외에 소개되는 첫 사례다.

홍석중은 '임꺽정'의 저자인 월북작가 벽초 홍명희의 손자며, 국어학자 홍기문의 아들이다. 1979년부터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작가로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대훈닷컴 출판사가 홍석중의 2002년작 장편 '황진이'를 국내에 소개한 게 2004년. 북한 작가 작품으로는 최초로 국내 공식 발간된 이 소설은 같은 해 북한 작품으로는 최초로 남한의 문학상(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지난해 저자는 대훈닷컴에 "내 허락없이 소설을 출간해 피해를 봤다"며 저작권 침해 소송을 냈다. 북한에 주소지를 둔 작가가 직접 소송을 제기한 첫 사례였다.

대훈닷컴측은 "북한 수출입공사와만 계약을 맺어 정식 수입했으나, 북한이 2003년 저작권 보호를 위한 협약인 베른조약에 가입하자 저작권자와 문제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출판사가 작가에게 1만달러의 위약금과 5% 인세를 지급하라'는 법원의 조정결정을 통해 저작권 분쟁은 해결됐다. 대훈닷컴은 이후 '황진이'를 재출간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어휘 7289개를 정리한 '홍석중의 소설'황진이'어휘사전'도 펴냈다.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 황진이(장윤현 감독, 씨즈 엔터테인먼트.씨네2000)도 제작되고 있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통해 해방 후 처음으로 남북이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은 영화다.

임프리마 코리아 관계자는 "대만과 중국측 출판사가 국내의 황진이 관련 소설을 모두 검토한 뒤 문학적 성취도가 가장 높다는 이유로 홍석중의 작품을 선택해 번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홍석중의 작품은 서경덕과 황진이의 사랑을 그린 기존의 소설들과는 달리 천민 출신 가공인물 '놈이'와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 북한 소설로는 드물게 파격적인 성애 장면을 담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훈닷컴측은 최소 경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해외 인세 수입을 홍석중씨에게 지급할 계획이다. 대훈닷컴 이기원 실장은 "출판사가 손해 볼 가능성도 있지만 북한 작품이 외국어판으로 발간된다는 데 문학사적 의미가 있다고 판단해 작업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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