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중국 외교관의 오만한 행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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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주한 중국 외교관이 음주 측정을 거부하며 경찰과 밤새워 대치하는 희한한 소동이 그제 서울에서 벌어졌다. 경찰은 외교관 신분만 확인되면 바로 보내주겠다고 했는데도 문제의 중국 외교관은 차창(車窓)조차 열지 않은 채 도로에서 8시간 반을 버텼다고 한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중국 대사관 측은 외교관 면책특권을 규정한 빈 협약을 들어 외교 차량에 대한 음주단속은 면책특권을 무시한 처사라고 항변하고 있다. 외교차량 번호판을 확인했으면 그냥 보내줄 일이지 왜 함부로 단속을 시도했느냐는 얘기다.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외교차량 번호판을 달았다고 운전자도 외교관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도난차량일 수도 있다. 따라서 경찰이 운전자의 신분 확인을 요구한 것은 당연하고 정당한 조치였다. 그런데도 신분 확인조차 거부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한국을 우습게 여기는 오만함 때문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뒷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면책특권의 취지는 외교관의 신분을 보호함으로써 외교활동을 원활케 하자는 것이지 주재국의 정당한 사법집행권조차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음주단속은 무고한 시민들의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문명국이라면 어디서나 하는 보편적 규제행위다. 면책특권은 외교관 업무와 관련된 사항에서 보장하는 것이지 음주운전 허가증이 아니다. 외교차량 번호판을 붙인 차량을 음주단속에서 무조건 통과시켰다면 차제에 바로잡아야 한다. 음주운전이 확인되면 외교관이라도 면허정지 같은 응분의 행정처분을 해야 한다.

상식 밖의 소동을 벌인 중국 외교관을 마치 제 식구 감싸듯 보호하는 인상을 준 외교부도 문제다. 중국에 대한 외교적 저자세가 반영된 탓 아닌가. 그러니 중국이 동북공정을 해도 목소리를 못 내고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보내도 방치하는 것이다. 문제의 중국 외교관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목해 추방 등 강력한 외교적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