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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한국·프랑스 만화로 120년 우정의 길 그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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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한국과 프랑스 만화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부터 니콜라 피네, 최규석, 채민, 변기현, 이두호, 나디아 지베르, 원종우 길찾기 대표, 루이 들라스, 이희재 작가.
그 뒤로 프랑스에서 출간된 한국 만화들. 왼쪽부터 ‘세이 러브(문석배-박재성)’‘단구(박중기)’‘궁(박소희)’‘용의 기사들(임석남)’.

올해는 한.불 수교 120주년이 되는 해.

이를 축하하는 의미가 '아미띠에(길찾기)'라는 만화책에도 담겨있다.

한국과 프랑스의 만화가 12명이 한국에 대한 단상을 그린 만화를 묶어 최근 양국에서 동시에 펴낸 책이다. '아미띠에'는 우정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프랑스판 제목은 한국을 뜻하는 '코레(카스터만)'다.

의미는 또 있다.

1996년 이현세의 '아마게돈'이 프랑스에 처음 번역 소개된 지 올해로 10년. 일본 '망가'의 위세 속에서도 한국의 '만화'는 점점 뿌리를 내렸고, 지난해부터 번역본이 활발하게 출간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셈이다.

프랑스를 필두로 본격적인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선 한국 만화, 그 저력을 유럽인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동시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은 프랑스의 대형 만화출판사 카스터만 관계자들에게 이 땅의 만화가와 기자가 묻고 싶은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9일 저녁 서울 마포구 홍대앞 한 중식당. 두툼한 목도리를 두른 세 명의 외국인들이 차가운 바람을 헤치고 들어섰다. 카스터만의 루이 들라스 대표, 나디아 지베르 편집장, 니콜라 피네 객원 편집장이다. 이들을 맞는 사람은 작품집에 참여한 한국 대표 만화가들. '머털도사'의 이두호, '악동이'의 이희재, '습지 생태 보고서'의 최규석, '로또 블루스'의 변기현, '양아치 클럽'의 채민이다. '구르믈버서난 달처럼'의 박흥용 작가만 참석하지 못했다. 따뜻한 요리와 차가운 술이 한 순배 돌아가자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직전에 방문한 김동화 작가의 화실에서)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하셨나 봐요.

"'황토빛 이야기'의 프랑스판을 보여드렸어요. 다음 작품 구상에 대한 얘기도 나눴고요. 한국 영화가 특유의 독창성으로 프랑스에서 화제가 된 것처럼 한국 만화도 호기심 많은 프랑스 독자들을 자극하고 있어요."

-일본 만화가 여전히 인기 아닌가요.

"물론 일본 만화가 많이 나오죠. 연간 4000여 편이 번역되고 1억 부가 팔려나가니까요. 하지만 독자는 늘 새로운 작품을 원하죠. 한국 만화는 그런 점에서 훌륭한 소스가 되고 있어요. 좋은 작품 있으면 꼭 저희에게 소개해 주세요(웃음)."

-한국 만화의 특징이라면 어떤 점을 꼽으시나요.

"프랑스 만화나 일본 만화에서는 찾을 수 없는 신선한 시각이 좋아요. 이번 작품집의 경우 최규석의 유머는 프랑스에서도 잘 통할 것이라 생각했죠. 이희재 작가의 그림 역시 한국적 정취가 잘 우러나면서 보편적인 정서를 담았고요. '귀신'의 석정현 작가의 경우 포토숍으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새로운 컨셉트가 강하게 어필하고 있죠."

-한국 작품이 프랑스 시장에서도 통할까요.

"우리는 지난 5월부터 번역본을 내놓기 시작했으니 아직 뭐라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기대가 커요. 지금까지 8편을 내놓았고 앞으로 매년 15편 정도씩 정기적으로 한국 작품을 선보일 생각입니다. 한국에 와보니 무엇보다 휴대전화로 만화를 보는 모습이 가장 인상깊었어요. 한국이 IT 강국이라는 점을 실감했죠. 모바일 만화 역시 새로운 시장이겠죠."

-카스터만은 '땡땡의 모험'으로 유명한데.

"'땡땡'은 여전히 연간 100만 부 이상 팔리는 인기 만화죠. (작가가 고인이 돼)신작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긴 하지만."

-아직도 그렇게 많이 팔려요.

"몇 년 전만 해도 400만 부씩 팔렸어요."

-'땡땡'의 성공 비결은 뭔가요.

"그걸 알면 제가 직접 그렸죠(웃음). 음~같은 그림을 그리더라도 뭔가 남다르게 조합해내는 것이 비결 아닐까요. 규석씨, 당신도 할 수 있어요."

-잉키 빌랄, 아트 슈피겔만, 뫼비우스, 다니구치 지로 같은 세계적인 작가들의 작품도 인기가 많죠.

"그런 작가들은 일 년에 60페이지짜리 책을 한 권 만들죠."

-일 년에 60페이지 그리고 먹고 사는 거, 그게 우리 꿈이에요(웃음).

"한국 작가들은 부지런해 프랑스 오면 돈 많이 벌 거예요. 한국에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작가가 많다면서요."

-양국 공동 작품집이란 형식이 독특하던데.

"일본에서 '야뽄'이라는 책을 먼저 내놨고 한국이 두 번째에요. 앞으로 중국과 인도와도 같은 방식으로 작업할 생각입니다. 문화 교류라는 차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작업 같아요. 다음번에는 한국 작가들이 프랑스에 와서 프랑스를 주제로 프랑스 만화가들과 작업을 하면 어떨까요."

이제 문을 닫아야 한다는 주인의 재촉에 이들은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더욱 진솔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만화가로서, 편집자로서의 고민은 어떤 것인지, 좋은 만화와 재미있는 만화란 무엇인지, 만화의 미래는 어떨 것인지 묻고 대답하고 토론하는 이들에게 12월의 밤은 너무 짧았다.

글=정형모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한국 만화, 프랑스 진출 언제부터 …
2003년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서 본격 시동
인터넷.모바일 만화의 역동성에 돌풍
이희재 '간판스타' 강풀 '아파트' 등 출간

한국 만화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계기는 2003년 1월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에 한국 특별전이 열리면서부터다. 당시 한국의 신구 세대 만화가 보여주는 다양한 시각과 인터넷.모바일 만화로 표현한 역동성에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에서 모여든 만화팬들은 깜짝 놀랐다.

한국 만화를 유럽에 가장 활발하게 소개하고 있는 오렌지 에이전시의 박정연(31) 불어권 팀장은 "한국의 작가주의 만화들은 '한국 만화는 일본 만화의 아류'라고 생각해 온 유럽인들의 인식을 바꿔나가고 있다"며 "많은 프랑스 출판사들이 한국 만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1780년 창립된 카스터만의 경우 5월부터 '한국/Hanguk'이라는 한국 만화 전용 컬렉션을 런칭해 이희재의 '간판스타', 강풀의 '아파트'등 단편과 단행본을 펴내고 있다. 내년에는 강도하의 '위대한 캐츠비'등을 출간할 예정이다.

카스터만과 함께 불어권 3대 만화출판사로 꼽히는 카나 역시 변병준의 '달려라 봉구'등을 내놓아 호평을 받았다. 특히 이 작품은 프로방스 지역 학생들이 선정하는 2006-2007 문학상 후보에도 올라 수상 여부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솔레이의 경우 프랑스 시나리오 작가와 한국 그림작가와의 합작을 추진해 눈길을 끈다. 임석남 작가(필명 도해)와 시나리오 작가 앙주가 함께 한 'Veil(베이-용의 기사들)'이 솔레이가 발간하는 잡지에 연재되고 있다.

또 파케에서 출간된 김동화의 '빨간 자전거'는 2005년 비평가협회 상의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이와 함께 한국 소설을 프랑스에 많이 소개한 쥘마의 경우 '스노우 캣'으로 유명한 권윤주 작가의 '고양이에게'를 'Toi, mon chat(너는 내 고양이)'라는 제목으로 얼마 전 출간했다. 이 책은 출간 직후 프랑스 동물보호협회가 주는 문학상을 수상했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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