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이탈리아 손잡고 조상 유물 되찾기 나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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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가 미국의 J 폴 게티 미술관으로부터 반환받기로 한 유물. 기원전 4세기 무렵 제작된 황금 화관(左)과 기원전 6세기에 만들어진 젊은 여성의 대리석상. [아테네 AFP=연합뉴스]

고대 세계의 강자였던 그리스.로마의 후손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조상의 유물을 되찾기 위해 손을 잡았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12일 보도했다.

기오르고스 불가라키스 그리스 문화장관은 "미국.유럽 박물관들로부터 유물을 돌려받기 위해 이탈리아와 공식 협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년 초 협정 체결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며 "그리스는 유물을 추적하고 범죄자를 기소하는 데 이탈리아의 전문지식을 활용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그리스 문화부는 1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J 폴 게티 미술관으로부터 기원전 4세기 무렵 제작된 황금 화관(花冠)과 기원전 6세기의 대리석 조각상 등 두 점의 유물을 돌려받기로 합의했다. 미술관 측은 그동안 "발굴 장소가 불분명하다"며 반환을 미뤄 왔지만 그리스가 증거 사진과 서류를 들이밀자 결국 승복했다. 뉴욕 타임스(NYT)에 따르면 그리스 경찰은 이 황금 화관이 그리스 북부 세레스 인근에서 1990년 한 농부에 의해 발견된 뒤 독일.스위스를 거쳐 미국으로 넘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유물 반환 협상을 하면서 그리스는 이탈리아의 사례를 많이 참조했다. 이탈리아는 게티 미술관이 소장한 52점의 유물이 자국에서 불법 유출된 것이라며 반환 협상을 벌여 왔다. 미술관은 지난달 이 중 26점을 반환하겠다며 '항복 선언'을 했지만 이탈리아는 "몽땅 돌려받아야겠다"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사법처리를 위협 수단으로 사용한 점도 비슷하다. 이탈리아는 2004년 게티 미술관의 전 큐레이터를 불법 유출 유물 취득 혐의로 기소했다. 그리스도 지난달 말 이 큐레이터에 대한 예비조사에 착수했다. 그리스 검찰의 이오니스 디오티스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유물 조사에 도움을 받기 위해 지난봄 이탈리아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불가라키스 장관은 "두 나라는 과거의 유산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유물이 어느 나라로 가야할지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탈리아는 자신들이 게티 미술관에 반환을 요청했던 52점 가운데 이번에 그리스 반환이 결정된 기원전 6세기의 대리석상은 포기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했다고 IHT는 전했다.

그리스는 특히 파르테논에서 떼내진 뒤 영국 대영 박물관과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등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대리석상의 반환에 집중하고 있다. 불가라키스 장관은 "이는 모나리자를 조각조각으로 찢어놓은 것과 마찬가지"라며 "모나리자의 얼굴은 스웨덴에, 한 손은 미국에, 다른 손은 이탈리아에 있다고 상상해 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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