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 높아진 안전진단 문턱, 낮아진 용적률, 부담되는 부담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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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서울 강남권 재건축 추진단지 상당수가 답답한 연말을 맞고 있다. 9월 말 재건축부담금제가 도입돼 입주까지 사업기간이 길어질수록 부담금이 늘어나는데 안전진단 등의 문턱을 넘지 못해 시간을 허비하는 곳이 많다. 새해에는 사업 순항을 기대해 보지만 뜻대로 될지 불확실하다.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권에서 재건축을 추진 중인 아파트 6만5000여 가구 가운데 5가구 중 2가구꼴인 2만4000여 가구의 재건축이 사실상 중단돼 있다.

◆재건축 여부 불확실=강남구 대치동 은마와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5단지. 은마는 2003년까지 강남권 재건축 시세를 주도했고, 잠실주공5단지는 그 이후 은마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교통 등 입지여건이 좋고 4000가구 정도의 대단지여서 파급효과가 크다.

하지만 정작 재건축 사업은 수렁에 빠져 있다. 둘 다 예비안전진단도 넘지 못해 재건축 여부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은마는 두 차례의 반려에 이어 2004년 말 세 번째 예비안전진단이 실시됐지만 구청은 2년이 지나도록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예비안전진단 통과로 결정될 경우 재건축 시세를 들쑤실 것을 우려해서다. 잠실주공5단지는 올 3월 예비안전진단을 신청했으나 '유지.보수' 판정을 받았다. 재건축이 필요할 정도로 건물이 낡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들 단지는 앞으로도 당분간 재건축 궤도에 오르기 어려울 것 같다. 은마의 예비안전진단 결과는 '뜨거운 감자'여서 쉽게 손댈 수 없다. 잠실주공5단지는 예비안전진단에서 퇴짜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신청하더라도 좀 더 기다려야한다. 8월 말 안전진단 규정이 까다로워져 문은 더 좁아졌다. 재건축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이들 단지의 시세는 여전히 강세다. 9월 말 10억원대 초반이던 은마 31평형이 13억원에 육박한다. 11.15 부동산대책 직전 13억2000만원에 거래된 잠실주공5단지 34평형이 대책 이후 12억3000만원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13억원으로 올랐다.

◆안전진단은 넘었는데 용적률에 잡혀=강남구에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마지막 저층인 개포지구 시영과 주공단지들. 7개 단지 1만3000가구다. 대부분 2004년 일찌감치 안전진단에서 모두 재건축 확정을 받았지만 더는 진척이 없다. 조합 설립까지 한 주공1단지는 재건축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안전진단만 통과한 다른 단지들은 재건축조합을 설립할 수 없다. 단지별 재건축 용적률이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구청에서 177%의 용적률을 제시했지만 주민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서울시 도시계획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보류했다. 177% 용적률로는 평형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어 재건축 효과가 작다는 것이다. 일부 단지는 177%를 받아들이겠다고 했지만 서울시는 전체 단지의 개별 용적률이 정해지기 전 개별 단지별로 사업하지 못하도록 했다.

주민들은 177%의 근거가 된 2002년 지구단위계획(개포지구 전체 평균 용적률 200%)을 바꿀 수 있는 내년을 기대하고 있다. 구청도 같은 택지지구인 강동구 고덕지구와의 형평성 등을 내세워 용적률 상향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내년 용적률 상향이 가능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서울시의 재건축 용적률 정책이 저밀도여서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 들어 3종 주거지역, 강동구 둔촌주공, 송파구 가락시영 등의 용적률 상향 움직임이 모두 무산됐다. 개포동 개포공인 채은희 사장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재건축은 확실하고 강남에서 이만한 환경의 단지가 없어 시세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단지 13평형이 7억8000만원 정도로 1년 전(5억5000만원)보다 40%가량 올랐다.

◆집안싸움으로 사업 꼬여=서초구 중층 단지들이 재건축 막바지로 착공 전 건축계획과 조합원 권리 등을 최종 결정하는 관리처분계획 단계에서 뒤뚱거리고 있다. 조합원 간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재건축부담금을 물게 됐을 뿐 아니라 앞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서초동 신반포1단지는 9월 25일 이전 관리처분계획을 신청해 부담금을 피했다고 안도했지만 10월 말 구청으로부터 반려통지를 받았다. 관리처분총회 때 찬성요건(출석 조합원의 3분의 2)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조합 측은 지난달 구청을 상대로 관리처분인가 반려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과는 불투명하다.

잠원동 한신5차와 반포동 한양은 9월 25일 이전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신청했지만 비대위 등 반대파와 얽힌 법정 다툼의 결과에 마음을 졸이고 있다. 판결에 따라 인가 신청이 무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반포 한양의 경우 반대파의 사업계획변경 총회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이 최근 받아들여 관리처분인가 신청이 취소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내분으로 아예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신청하지 못한 단지들은 더욱 갑갑하다. 서초동 한양, 잠원동 한신6차, 반포동 우성 등이 정족수 미달 등으로 부담금을 안게 됐다. 사업 진척이 빨라 부담금을 피할 것으로 기대됐다가 부담금을 내게 된 이들 단지의 시세도 타격을 받는다. 신반포1차의 경우 10월 중순에 비해 평형별로 2000만~3000만원 빠졌다. 한신5차도 11월 이후 평형에 따라 최고 5000만원 떨어졌다.

조철현·함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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