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남북고위급회담 망설이는 북한|연기는 해도 취소 못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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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을 보름정도 눈앞에 두고있는 시점에서 북한이 한미합동 팀스피리트훈련 등을 이유로 대화중단입장을 계속 표명, 회담성사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북한은 또 10년만에 다시 평양 등지에서 반공훈련을 실시하는 등 분위기를 긴장시켜 회담이 연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팀스피리트 훈련실시와 함께 북한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로동신문 사설은 팀스피리트훈련이 「북침전쟁연습」이라고 했고 중앙통신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행위」라며 예전의 비난수준을 유지했다.
조평통과 외교부도 성명을 내고 팀스피리트훈련이 남북대화에 장애가 될 것임을 경고했다.
외교부는 1월26일 성명을 통해 『훈련강행은 남북고위급회담 진전에 빗장을 가로질러 파탄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평통도 1월27일 성명에서 『남조선당국이 우리와 더불어 나라의 평화와 통일문제를 논의할 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하는 것을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조평통과 외교부의 성명은 훈련의 강행이 4차 고위급회담 무산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김영남 외교부장은 2월1일 평양의 기자회견에서 이를 확인시켰다.
그는『팀스피리트훈련이 회담에 인위적 장애가 되고 있다』며 『회담취소문제를 심각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팀스피리트훈련이 있을 때마다 남북대화가 단절돼 왔던 전례에 비추어 이 같은 일련의 발언들은 4차 고위급회담이 무산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 같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회담을 취소하거나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아직은 지배적이다.
그 이유로는 우선 북한이 남북관계개선에 노력해야할 입장에 처해있다는 점이다.
급변하는 동북아정세에의 적응, 경제난 해소, 외교수세탈출 등 다목적용으로 시도되는 일본과의 국교수립회담이나 대미관계개선 등이 남북관계개선 진척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에 북측이 과거처럼 강경일변도의 자세를 취할 수는 없게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일본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서두르지 못할 것이며 미국 역시 대북 관계개선의 선결 5대 과제 가운데 하나로 남북관계개선을 꼽고있어 북한이 대일·대미 관계개선을 희망한다면 남북관계 악화라는 선택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즉 팀스피리트를 이유로 고위급회담을 취소할 경우 남북관계냉각, 대미·대일 관계 후퇴가 분명해지는 만큼 북한이 회담취소 쪽으로 급선회할 가능성은 적은 셈이다.
북한으로서는 4월말 평양에서 개최될 IPU총회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의회 정치인이 모이는 IPU 총회는 북한으로서는 절호의 외교마당이 될 것이며 북한은 이를 통해 수세에 몰려있는 상황에서 벗어나려 할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북한은 그 구체방안으로 주한미군철수문제를 부각시키고 북한의 평화이미지를 드러내려 할 것이 분명하며 이 같은 전략이 성공을 거두려면 북한이 총회개회 전까지 「남북관계개선에 애쓰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고 이는 고위급회담을 예정대로 진행시키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회담을 예정대로 진행함으로써 그들의 평화이미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대화를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훈련을 강행하는」남한의 이중성을 드러낸다는 전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한의 군축 및 평화연구소 김병홍 부소장이 지난 1월22일 LA에서 『팀스피리트훈련과 관계없이 오는 2월로 예정된 고위급회담에 참가할 것이며 좀더 신축적인 자세로 대화에 임할 것』이라고 한 발언은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 정부의 한 당국자도 『남북이 3차 고위급회담이후 접촉을 계속해왔다』며 『북은 이들 접촉을 통해 이번의 고위급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것임을 강하게 시사해왔다』고 말해 2월25일의 회담이 예정대로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팀스피리트훈련이 진행되는 가운데 평양회담이 이루어질 경우 이는 북한이 남한의 군사훈련을 묵인한다는 매우 큰 노선변화를 의미하게 되므로 북한은 예정대로의 개최나 취소가 아닌 중간을 택해 회담을 연기하는 방안을 들고나올 수도 있다.
즉 회담취소가 가져올 남북관계경색에 대한 비난을 피해야 할 북한으로서는 남북대화지속의 필요성과 「정치군사문제 우선 해결」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는 절충안으로 회담연기를 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대개 회담이 2∼3일 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최종 입장표명을 보류해왔던 관례로 보아 회담개최여부나 연기 가능성 등은 막바지에 가서야 윤곽이 잡힐 것 같다. <안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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