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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전사 재인식 … 실명 비판 … 역사 길잡이 '역시'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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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역사 다시 보기 열풍-.

2006년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 근현대사의 재해석을 놓고 치열한 줄다리기가 전개됐다. 특히 보수 지식인들이 역사 논쟁을 공격적으로 주도했다. 예전 같으면 공격은 진보 측 차지였다. 2월 출간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이 주요한 전환점이었다. 각종 이념논쟁에 '실명(實名) 비판'이 전개됐다.

◆ '해전사' vs '재인식'=1980년대 이후 한국 근현대사 해석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책은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하 해전사.解前史)이다. 79년 해전사 첫 권이 나온 지 27년 만인 올 2월, 해전사의 위상을 뒤흔든 책이 나왔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하 재인식)이다.

두 책의 사관 차이는 뚜렷하다. 재인식은 해전사를 '좌파 민족주의 편향'이라고 비판했다. 해전사가 민족주의에 기대고 있다면, 재인식은 탈(脫)민족주의를 주장한다. 올해 전개된 각종 역사 논쟁은 해전사 대 재인식의 충돌이라 할 만하다.

해전사는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정신을 존중하고 남북의 분단을 비판하며 통일을 지향한다. 재해석은 일제시대에도 경제가 발전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수용하고 대한민국의 건국과 생존, 그리고 비슷한 사례를 찾기 힘든 번영의 과정을 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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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명(實名) 비판 시대=재인식의 편집위원 이영훈 서울대 교수가 진보학자인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와 최장집 고려대 교수를 거론하며 실명 비판의 서막을 열었다. "민족 지상주의" "혁명의 이념"이라고 질타했다.

그러자 진보성향 계간지 '창비' 주간을 지낸 최원식 인하대 교수가 이영훈 교수를 비판하고 나왔다. 최 교수는 재인식에 대해선 "역사를 되돌아보는 참고서로 쓰일 수 있다"고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이영훈 교수의 글에 대해선 "역사와 정치가 구분되지 않은 글쓰기"라고 비판했다.

담론의 중심에서 맹활약한 이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다. 올 초 '변혁적 중도주의' 노선을 천명한 백 교수는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며 실명으로 비판했다. 진보 쪽의 최장집 교수와 보수 쪽의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등이 각각 비판받았다. 분단체제의 현실을 도외시한 이는 진보건 보수건 비판의 대상이 됐다.

백 교수도 비판받았다. 백 교수가 주장한 분단체제론에 대해 안병직 교수가 "논리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꼬집었고, 윤평중 한신대 교수도 "결정론적이고 목적론적이어서 학술적 진술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윤 교수는 냉전시대의 억압과 폐해를 앞장서 지적했던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에 대해서도 비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 뉴라이트 vs 뉴레프트=뉴라이트 진영은 올해 뉴라이트 재단을 발족시키는 등 급성장 양상을 띠었다. 뉴레프트는 1월 '좋은 정책 포럼'의 출범과 함께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이 부각된 배경엔 개혁적 보수(산업화 세력)와 합리적 진보(민주화 세력)가 건강한 경쟁을 통해 우리 사회를 선진국으로 이끌어 달라는 바람이 담겨 있었다.

뉴라이트 계열 '교과서 포럼'이 11월 말 내놓은 대안교과서 시안이 몰고 온 파문은 '뉴'를 표방하는 지식인들이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좌편향을 바로잡으려다 우편향을 범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 실학(實學)은 존재했었나=학자들이 사석에서 얘기해 오던 "실학이 학파로서 존재했었나"라는 의문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7월 한림대 한국학연구소의 학술대회에서다. 한국학의 핵심 키워드인 실학 개념의 해체 움직임이다. 실학자들이 성공했더라면 우리도 일본처럼 자본주의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주장이 우리 학계의 통설이었다. 그 같은 통념은 '조선시대=봉건시대=주자학'을 한편에 놓고, 다른 한편엔 '조선 후기=자본주의 맹아=실학'을 이분법으로 대립시켰다. 이 학술대회에선 "과거제도가 있던 조선은 봉건사회가 아니라 중앙집권사회가 아닌가"를 묻는 등 기존 이분법에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 희망의 씨앗 '역시(歷試)'=11월 25일 제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역시.歷試)이 시행됐다. 사관학교 입시에서조차 제외된 '홀대받는 한국사'를 구원하기 위해 도입됐다. 주최 기관인 국사편찬위원회는 '인식 차이를 드러내기보다 공통분모를 확인하는 문제를 주로 출제함으로써 분열된 국론을 통일하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는 취지를 밝혀 주목받았다.

'고구려연구재단'이 8월 해산했고, 중국.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할 통합적 기구인 '동북아 역사재단'이 9월 발족했다. '역사 전쟁'보다 '역사 외교'를 지향한다고 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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