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콘 대모' 진 커크패트릭 사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행정부 시절 보수적 대외정책을 주도한 '네오콘의 대모' 진 커크패트릭(사진) 전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7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 자택에서 숨졌다. 80세.

커크패트릭은 레이건 집권 시절 미국 최초의 여성 유엔대사로 임명돼 81~85년 미국의 보수적 대외정책을 주도했다고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이 평가했다. 그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소련 등 공산국가들에 대한 봉쇄정책을 주도했다. 또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커크패트릭이 처음부터 보수주의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에는 좌파적 이념을 갖고 활동하다가 민주당원이 되어 76년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지미 카터를 돕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 카터 대통령의 나약한 외교정책에 실망해 보수주의로 전향하게 됐다.

79년 보수파 잡지인 '코멘터리'에 기고한 '독재와 이중 기준'이라는 글이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레이건의 눈에 띄어 그의 대선 캠프에 합류하게 됐다.

이 논문에서 커크패트릭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면 제3세계의 독재정권과도 손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은 '커크패트릭 독트린'으로 불리며 레이건 행정부의 보수주의적 외교정책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

레이건 캠프 합류를 앞두고 당시 민주당원이던 커크패트릭이 공화당으로 전향하는 것을 망설이자 레이건이 "나도 한때는 민주당원이었다"며 그녀를 설득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소개했다.

유엔에서 커크패트릭은 미국의 이익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였다. 미국에 반대하는 나라는 아예 유엔 내 투표기록을 작성해 미 의회에 넘겼다. '미국에 반대하는 것은 미국의 원조를 잃을 수 있는 행위'라는 명백한 경고였다. 그는 레이건에 이어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설까지 나올 정도로 당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게 됐다. 최근에는 유엔대사 임명 문제를 놓고 존 볼턴 대사를 적극 지지하기도 했으며, 네오콘의 대부인 어빙 크리스톨 등과는 오랜 친분을 유지해왔다. 로이터 통신은 커크패트릭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정책 결정에도 큰 영향력을 미쳐왔다고 보도했다.

1926년 오클라호마주에서 태어난 그는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직을 맡았던 시기를 제외하고는 조지타운대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최근까지는 워싱턴의 보수파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에서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했다. AEI는 8일 "미국은 위대한 애국자이자 자유의 수호자를 잃었다"고 그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박현영 기자

◆ 네오콘=신보수주의자라는 뜻. 특히 미국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포진했던 강경 보수주의 그룹을 일컫는다.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이용해 불량국가에 대한 선제공격을 감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패권주의 선봉자들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루이스 리비 전 부통령 비서실장, 더글러스 페이스 국방부 차관 등 네오콘의 핵심 인사들이 최근 부시 행정부를 떠나 세력이 크게 위축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