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가려진 이라크군 희생자수/수천에서 수만명까지 추측만 무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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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반전여론 거세질까 발표 기피
전쟁을 하는 나라는 적군의 희생자를 비롯,전과를 발표하는 것이 상례다.
적에 대항하는 아군의 사기를 높이고 국민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라크와 20일째 전쟁을 하고 있는 미국은 미군과 연합군의 희생자를 밝히면서도 군사시설·전투기·탱크 등 시설물에 대한 것을 제지한 이라크군 희생자에 대한 전과는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따라서 미국 공군등의 공습으로 이라크의 어떤 시설이나 군사장비가 파괴되었는지는 알 수 있어도 지금까지 전쟁에서 이라크군이 얼마만큼 인적피해를 보았는지는 알리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라크인의 인적피해는 수천명에서 수만명까지 오직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미국이 이라크의 인명피해를 전과로 밝히지 않는 이유는 몇가지로 설명된다.
우선 적의 인명피해를 정확히 계산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미 국방부나 사우디아라비아주둔 미군사령부의 전황 브리핑에서 군지휘관들이 흔히 제시하는 변명이다.
공습공격위주의 지금까지 전쟁에서 적의 인명피해를 정확히 산정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면서 슈워츠코프 미군 사령관이 적희생자 추정발표에 반대입장을 밝힌 점과 미의 첨단인공위성과 공군이 지상의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확인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꼭 이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미 군사지도자들은 또 이번 전쟁의 군사적 측면에서 볼때 적의 희생자수는 중요하지 않고 지휘부나 통신시설 파괴등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 두번째 이유는 미국의 군사전략이 공중공격위주로 이라크군의 지휘통제시설과 대공방어능력을 무력화시키는데 목표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럴듯한 설득력이 있으나 미국의 공습목표가 지상전을 대비한 이라크 공화국수비대의 전투력약화에 초점이 두어지면서 충분한 설명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세번째 이유로 베트남전쟁에서 적의 사상자 발표가 미국내에 반전여론등 부정적 영향을 주었던 교훈이 지적된다.
베트남전에서 가끔 과장되기도 했던 적의 희생자수 발표가 전쟁의 이미지를 잔인한 것으로 만들며 반전여론을 강화,결국 패한 전쟁으로 만들었음을 미국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베트남전을 경험한 현 미군지도부는 이번 전쟁에서는 이를 결코 반복치 않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설명은 미국이 반이라크 연합전선유지와 종전후 미국이 구상하는 아랍안보질서를 위해 이라크 희생자를 발표치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의 전쟁희생자가 발표될 경우 회교형제애를 강조하는 아랍민족주의세력에 동기를 부여,반이라크연합에 가담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시리아 등의 국내 분위기에 영향을 주고 자칫 반이라크연합이 와해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미국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미 뿐 아니라 이라크도 국민과 군의 사기를 고려,민간희생자 외에 군전사자수를 밝히지 않고 있어 이라크군 희생자수는 베일에 가려있다.
어쨌든 이번 걸프전쟁은 숫자에 차이는 있어도 연합군의 희생자만 양쪽에 의해 발표되고 있을 뿐 이라크측의 인명피해는 전혀 밝혀지지 않는 기이한 전쟁이 되고 있다.<뉴욕=박준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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