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동계 오륜 불운의 스타 미 댄 젠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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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빙상 왕관 되찾겠다" 재기 선언
갤거리 동계올림픽 비운의 스타 댄 젠슨(25·미국)은 다시 일어설 것인가.
80년대 후반 세계 빙상 스프린트계를 석권했던 젠슨이 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의 악몽을 떨치고 재기를 선언, 미국인들을 들뜨게 하고있다.
88년 2월 세계스프린트 빙상선수권 대회 5백·1천m에서 우베마이(26·독일)를 제치고 잇따라 우승,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한껏 드높였던 젠슨이 길고 긴 어둠의 터널로 들어선 것은 그로부터 불과 1주일 후인 캘거리 동계올림픽.
당시 미국언론은 젠슨의 2종목(5백m·1천m)석권을 기정사실화하며 「미국 스포츠맨의 표본」「화목한 가정의 깨끗한 선수」등으로 젠슨을 찬양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약물·스캔들로 얼룩진 미국 스포츠계에서 젠슨은 잡음 한번없이 묵묵히 훈련에만 몰두, 미국민들은 모범적으로 성공한 북부 위스콘신의 이 순박한 젊은이에게서 스포츠맨으로서의 「우상의 조건」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스타를 시샘하는가.
젠슨은 첫 5백m 경기일인 2월16일 새벽 고향의 부친으로부터 막내누나 제인이 죽었다는 비보에 접하고 잠자리에서 화들짝 일어난다.
얼마나 자상하고 자신을 아껴주던 누나였던가.
9남매중 막내인 젠슨을 유난히 예뻐했던 제인이 백혈병에 시달리다 끝내 세상을 떠나자 젠슨은 넋을 잃었다.
그는 북받치는 슬픔에제 정신이 아니었지만 이를 악물었다.
기필코 우승, 금메달을 누나의 영전에 바치겠노라고-.
그러나 1위로 달리던 젠슨은 첫바퀴 코너입구에서 미끄러지면서 그대로 빙판에 나동그라졌다.
이어 19일 열린 1천m에서마저도 골인지점 2백m들 앞두고 또다시 넘어졌다.
젠슨은 넘어진채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꼈고 팀 동료인 닉 토메츠가 뛰어가 부축했다.
대회가 끝나고 미국인들의 안타까움과 격려가 담긴 수천통의 편지·전화가 쇄도했지만 젠슨은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다.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
이후 젠슨은 월드컵 등 국제대회에 간간이 출전했지만 연습부족과 이로 인한 체력감소로 체면을 유지하는 수준이 고작이었다.
그가 주도하던 얼음판도 우베 마이라는 불멸의 스타가 오늘까지 3년째 무적으로 군림하고 있고 소련의 이고르젤레로프스키(28)와 신예안드레이 바크발로프, 일본의 구로이와 형제 정도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젠슨이 우베 마이를 꺾고 기필코 우승하기를 열망, 그의 재기를 부추기고 있다.
손·머리가 유난히 크고 또 지극히 겸손하고 수수한 불운의 스타가 한때의 실의를 딛고 거뜬히 일어서 미국인의 자존심을 되찾아주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10년째 젠슨을 지도하고 있는 존 티포드 감독은 『지금까지 우베 마이의 시대였지만 92년부터는 젠슨의 해가 될 것이다. 문제는 젠슨이 심리적 안정을 되찾는 일뿐』이라고 호언하고 있다.
이는 젠슨이 1m88cm·90kg의 건장한 체구임에도 1m80cm·75kg의 우베 마이에게 진것은 뜻밖에 몰아친 정신적 충격이 원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젠슨은 지난해 샬럿(노스캐롤라이나) 출신의 로빈을 아내로 맞아들이면서 심리적 안정을 되찾고 하루 8시간 이상씩 강훈으로 몸을 만들어가고 있다.
『우베 마이도 특출한 선수이지만 이 정도의 훈련이라면 머지않아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다』젠슨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심스럽지만 자신감을 나타냈다.
내년 2월의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이 불운의 스타가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게 되면 스포츠계 뿐만아니라 스포츠 내셔널리즘이 유별난 미국인들에게 또 하나의 찬란한 영웅이 될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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