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건너 전쟁」 아니다/김병주(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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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주 목요일 아침부터 TV앞에서 보내는 우리의 시간이 부쩍 늘어났다. 일부 연만하신 분들은 일상생활의 따분함을 달래는 짜릿한 흥분을 구하기도 했을 것이고,젊은 전후세대들은 비디오게임을 즐기듯이 신병기들의 위력에 탄사를 던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근래의 포클랜드·그레나다·파나마 등지의 사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게,그리고 지리적으로 보다 가까웠고 많은 우리 젊은이의 피가 흘렀던 월남전쟁보다 더욱 긴박한 느낌을 주는 전쟁이다. 그것은 단순히 우리가 어제의 경험보다 오늘의 체험을 더 생생하게 느끼는 탓만은 아니다.
○석유중요성 무시못해
이번의 걸프사태는 크게 보아 두가지 이유에서 단순히 강넌너 불 아닌 우리의 전쟁이기도 하다는 느낌을 갖게한다. 하나는 석유때문이고,다른 하나는 국제적 모험주의의 확산가능성 때문이다.
석유는 단순히 수많은 상품중의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모든 나라의 경제성장과 번영의 가능성을 좌우하는 기초자원이다.
석유화학제품은 우리의 의·식·주생활 구석구석에서 직접·간접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교통·통신 등 현대문명의 이기들 역시 석유와 무관할 수 없다. 연료로서 석유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원자력에너지가 저항없이 보다 폭넓게 수용되거나 다른 획기적인 대체에너지가 개발되지 않는 한,석유는 절대 불가결하다.
사담 후세인은 쿠웨이트 합병으로 세계 석유의 19%를 차지했다.
이번 전쟁과 같은 제재가 없다면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점령해 세계 석유의 44%를 차지하려 했을 것이고,이 경우 공급대상국,물량 및 가격조건 등의 결정이 사담 후세인의 좋은 무기로 될 뻔했다. 더구나 그는 지난날 위대했던 아랍제국의 꿈을 되살리려는 모험주의자로 정평이 나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 사태를 서방 강대국들이 약소국의 자원을 염가로 제공받기 위한 강탈전쟁으로 보고 반전을 외치는 목소리를 높이면 이는 그에게 오히려 장기전으로 끌면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줄 우려가 있다.
○후세인 모험주의 제동
만일 그에 대한 제재가 실패한다면 한반도와 같은 또다른 취약지역에서 유사한 모험주의를 부채질하게 될지 모른다.
개전초 다국적군의 승세는 우리를 지나치게 호전주의 분위기로 몰고갈 우려가 있다. 우리는 다국적군의 노력에 직접·간접으로 지원하는 가운데서도 우리의 국익,특히 경제적 이해관계의 저울질을 게을리할 수 없다. 전쟁중에는 전비의 부담이 있는 반면 일부 국산장비의 수출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사막의 폭풍」이 가라앉은 다음에 있을 재건사업 참여기회를 고려하더라도 이라크 시장에의 참여배제에 따른 손실보다 쿠웨이트등 주변국가들에의 참여이익이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 건설시장 뿐만 아니라 일반상품시장을 따져보아도 역시 같은 결론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일 다국적군의 노력에 협조함에 있어 미온적인 자세를 보일 경우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을 비롯한 여타 해외시장에서 당할 수 있는 손실은 더욱 막대할 것으로 보아 틀림없다.
이와 관련해 우리는 지난해 8월 걸프사태 발발 초기에 소극적이었던 일본의 협조자세가 최근 적극적으로 변화한 점을 주목할 만하다.
개전초 비교적 단기전으로 끝날 것으로 예상해 세계시장에서 유가는 내리고 주가는 오르는 등 예상외의 반응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 1주일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서는 전쟁이 반드시 단기전으로 끝나지 않고 어쩌면 장기화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펴지기 시작하고 있다. 처음 신기하게 보였던 신무기들의 위력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기대 수준이 재조정되고 있다.
전쟁은 아마도 앞으로 몇주간 더 진행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장기화의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요즈음 우리는 자동차 10부제 운행·유류절약 노력 등 에너지 절감운동을 펴 국민의 폭넓은 호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예상되는 전쟁의 장기화와 전쟁 이후 중동지역의 새로운 세력균형이 이루어질 때까지의 혼란에 대비해 보다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본다.
○국익추구는 세련돼야
오늘날의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이라고 부르듯이 세계경제의 상호 의존관계가 깊어가고 교통 및 통신수단이 날로 발전하고 있어 세계 한모퉁이에서 벌어지는 일이 단시간안에 전세계로 직접·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최근 우루과이라운드나 대미 통상협상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국제적 상호 의존관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긴요하다.
우리의 경제적 국익을 표현하고 상대방의 이해를 촉구하는 수단 및 방법도 세련되고 다듬어져야 하겠다. 일방적인 주장,결사반대의 슬로건,할복자살의 시위 등이 과연 우리의 교역상대방의 눈에 어떻게 비춰질지 다시 한번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세상은 강건너 불도 없듯이 상대방 없는 국제교역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서강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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