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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 바이올리니스트 세르게이 트로파노프 첫 내한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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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러시아 전설에 따르면 집시는 원래 새였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땅에 내려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법을 잊어버리고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닌다고 한다. 모든 집시가 다 방랑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집시와 정처없는 방랑은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방랑은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과 정든 곳을 떠나는 '슬픔'을 동반한다.

동유럽 몰도바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세르게이 트로파노프(사진)는 슬픔이 가득한 집시음악을 연주한다. 집시가 아님에도 그의 손끝과 마음에서는 집시보다 훨씬 집시적인 선율이 흘러나온다.

트로파노프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아니 한국인이 찾아낸 보석 같은 뮤지션이다. 그의 앨범 'Gypsy Passion'은 국내에서 4만 장이 넘게 팔렸다. 그 밖의 집시 시리즈 앨범들까지 합하면 6만여 장이 넘는다. 음반 500장 팔기도 힘든 요즘,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앨범이 이토록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한 것은 트로파노프의 음악이 한국인의 입맛에 얼마나 잘 맞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또한 우리 입맛에 맞는 '한국적인 스타'가 음반 불황의 타개책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4인조 편성으로 갖는 첫 내한공연(9일 성남아트센터.1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의 레퍼토리를 보면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허공을 칼로 베듯, 날카로운 바이올린 연주로 시작하는 'Moldova'는 이미 각종 드라마와 최근 자동차 광고 등을 통해 그의 대표곡으로 자리 잡았다. 강대국 틈에서 고난의 역사를 걸어온 자신의 조국을 표현하는 듯한 이 곡을 듣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바이올린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다.

이 곡을 포함해 공연의 절반은 '검은 눈동자' 'Two Guitars' 'Russian Gypsy' 같은 집시 민요로 꾸며지는데, 독특한 점은 탱고의 명곡들이 함께한다는 사실이다. 탱고 중의 탱고로 꼽히는 'La Cumparsita(라 쿰파르시타: 작은 가장행렬)', 영화 '여인의 향기'와 '트루 라이즈'에 쓰여 친숙한 'Por Una Cabeza(포르 우나 카베사: 간발의 차)',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명곡 'Libertango(리베르탱고)'와 'Oblivion(망각)'까지. 여기에 닥터 지바고의 '라라의 테마'와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 추가되면서 공연은 한국형 맞춤 공연이 된다.

낯선 곳에서의 첫 공연의 특효약은 친숙한 레퍼토리라는 것을 트로파노프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슬프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선호하는 음악팬과 요즘처럼 을씨년스러운 계절에 허한 마음을 달랠 뭔가를 찾는 이들 모두에게 이번 공연은 좋은 선물이 될 듯하다. 공연 문의 02-548-4480.

송기철·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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