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오지' 몬태나서 한·미 FTA 열리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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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태나주 빅스카이는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오지(奧地)'다. 미국이 이곳을 한.미 FTA 5차 협상지로 선정한 것은 10월에 열린 4차 협상지 제주를 의식한 때문이었다. 한국 측이 개방을 반대하는 감귤 주산지인 제주에서 4차 협상이 열린 만큼 미국의 관심 품목인 쇠고기 주산지 몬태나를 5차 협상지로 택한 것이다. 미국이 의회 등에서 FTA 지지 여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쇠고기 벨트에 포함된 이곳에서 협상하는 모습을 보이려 했다는 게 한국 측의 분석이다.

문제는 상황이 미국 협상단의 의도와 달리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당초 5차 협상이 열리는 12월엔 미국산 쇠고기가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2년10개월 만에 시도된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수입이 뼛조각 때문에 무산됐다. 이에 따라 쇠고기 문제가 한.미 FTA 협상에 커다란 장애물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몬태나가 협상 장소라는 사실 자체가 5차 본협상의 앞길을 험난하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당장 몬태나주의 연방 상원의원인 맥스 보커스(민주당)가 3일 양국 수석대표를 초청한 오찬에서 "미국 쇠고기는 뼈가 있든 없든 안전하다"며 뼈 있는 소리를 했다. 보커스 의원은 차기 상원 재무위원장에 내정된 의회 내 실력자로, 미국 정가에서 '미스터 쇠고기'라고 불릴 정도로 축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다. 그는 오찬장에서 몬태나산 쇠고기 스테이크를 썰어 먹으며 한국말로 "맛있습니다"를 5~6차례 하기도 했다. 이날 오찬장에는 행사에 어울리지 않게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청바지에 웨스턴 부츠를 신고 참석한 지역 상공업자가 10여 명에 달해 몬태나가 축산업의 본고장임을 실감케 했다.

한.미 양국은 빅스카이에서 5차 본협상을 4일(한국시간 5일 오전)부터 8일까지 할 계획이다. 양국은 또 이번 본협상 기간 중인 8일 미국 워싱턴에서 섬유분과에 대한 별도의 고위급 회담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네 차례 협상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섬유 분야를 따로 떼낸 것이다. 협상 대표도 한국 측에선 이재훈 산업자원부 산업정책본부장, 미국 측은 스콧 퀴젠베리 미 무역대표부(USTR) 수석협상관이 맡는 등 차관보급으로 격상됐다. 섬유 분야에선 한국 측이 미국 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빅스카이(몬태나주)=홍병기 기자

◆ 몬태나주=몬태나는 스페인어로 ‘산’이란 뜻이다. 미국에서 네 번째로 면적이 넓은 주(州)이지만 로키산맥 등 산악지대가 많아 인구는 66만명에 불과하다. 농업과 축산업이 주된 산업으로 평균 소득은 2만8900달러(2005년 기준)로 미국 내 41위인 ‘벽촌’이다.협상 장소인 빅스카이는 5월까지 눈이 녹지 않는 고산지대다.

◆ 쇠고기 벨트(beef belt)=미국에서 축산업이 발달한 서부지역 일대를 총칭하는 표현. 몬태나를 비롯해 와이오밍, 콜로라도, 네브래스카, 캔자스, 오클라호마, 텍사스 등이 쇠고기 벨트에 속한다. 이들 지역의 연방 의원들은 쇠고기 등 축산물의 해외 수출을 위해 행정부와 외국 정부에 직접적인 압력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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