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전으로 밀린 한일 경제호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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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틀간의 한일 정상회담은 실리외교시대의 핵심주제인 경제협력문제를 소홀히 다룸으로써 알맹이가 빠진 겉치레 행사로 끝나고 말았다.
물론 우리는 양국간에 걸린 주요 정치현안의 타결을 과소평가할 생각은 없다. 재일동포의 법적지위 보장,한일 우호협력 3원칙,그리고 북한­일본관계 개선에 적용될 5원칙의 합의는 그것대로 작지 않은 의미를 지니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실질적인 중요성을 지니는 무역·기술협력분야의 성실한 논의가 배제됨으로써 정상회담의 총체적 의의는 반감되고 만 느낌이다.
한일무역의 불균형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한국경제 전반에서 그것이 지니는 심각성 또한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측의 대일적자 규모는 작년에는 마침내 90억달러를 넘어 사상최대 규모를 기록했고 무역적자의 총규모를 크게 웃도는 수준에 이르렀다.
해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만 가는 무역흑자가 무역상대국의 이익은 물론이고 일본경제 자체의 이익을 위해서도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 일본정부의 근본적인 성찰이 있기를 기대한다.
일본 국내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일고 있는 적정흑자규모 논의를 보다 진지하게 음미해보고 일본이 좋아하는 「공영」의 참뜻에 맞게 대외정책을 재조정해가야 할 것이다.
일본이 말만 거듭하면서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또 하나의 양국경제현안은 산업기술협력이다. 말이 협력이지 실제로는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기술을 사는 것이다. 웬만한 수준의 고급기술이면 일본기업들이 그것을 팔기를 기피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온 세계가 다 아는 일이다.
외교적 통로를 통해 일본정부는 번번이 일본기업들에 기술협력을 권유하겠다는 말로 정부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음을 암시해왔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기술협력문제는 애당초 양국 정부간 협의의 대상에 포함시키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다. 일단 외교테이블에 오른 이상 일본정부는 보다 성의있는 실천방안을 강구해야 했고 특히 가이후(해부준수)총리의 방한기회에 그것이 제시돼야 했을 것이다.
쉽게 말해 국제분업에 의한 모든 국가의 복지증진은 각국이 상대적으로 앞선 분야에서 수출하고 뒤떨어진 분야에서 수입하는 방법으로 달성되는 것이다.
기술의 무기화 내지는 기술제국주의의 기미마저 보이는 일본의 기술수출 기피현상이 경제교류의 모든 분야로 확산돼 식량과 자원이 모두 무기화 되면 누구보다 일본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대일무역 역조시정과 산업 기술협력의 추진을 위해서는 우리측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는 것을 한편으로 인정하면서도 일본이 이 분야에서 성실성을 보이지 않는한 이른바 우호협력 3원칙에서 밝힌 「진정한 동반자관계」「아태지역의 번영과 개방을 위한 공헌 강화」는 아무도 믿지 않는 빈말이 되고 만다는 것을 일본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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