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현실인식에서 출발을/노대통령의 연두회견이 남긴 여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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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은 한해의 시정방향을 천명하는 장이며 회견형식을 빌린 국민과의 대화의 자리다. 연두회견은 대통령이 한햇동안 펴나갈 국정대강과 통치철학에 관해 국민에게 알리고 싶거나 이해를 촉구하고 싶은 것을 밝히고 호소하는 유용한 기회여서 국민들이 거는 기대와 관심이 높은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8일 회견에서 밝힌 새해 시정방향중 주목할 대목은 집권후반기에 그가 어떤 정치·경제·사회적 과제에 어떤 비중을 두고 있느냐는 점이다.
노대통령이 지자제선거·경제·국민생활에 관해 안정성 확보에 시정의 역점을 두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만 하다.
무엇보다도 30년만에 부활되는 지방의회선거가 혼탁하게 치러진다면 그 제도 자체의 바탕이 처음부터 위협받게 될뿐 아니라 정치·경제·사회의 안정조차 뒤흔들 소지가 있다.
그는 지자제선거에서 「민주선거의 규율을 파괴하는 행위는 반민주적 범죄」로 규정해 엄격한 법의 제재를 받도록 하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피력했다.
지금까지 공명선거를 다짐하지 않은 정권이 없었지만 노대통령은 이에 덧붙여 국민에게 「선거혁명을 이루어야 할 것」을 호소한데 대해 우리는 의미를 부여하는 바다. 노정권이 앞으로 이를 어떻게 가시적으로 실천할지는 두고 볼 일이나 그 관건은 여권이 수범을 보여야 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여권 스스로가 후보선정에서부터 선거과정에까지 엄정한 기준을 세워 실천하면서 준법에 앞장설 때 야당과 후보들이 그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노대통령은 경제의 안정기조 유지를 위해 물가인상의 최대한 억제와 제조업의 활성화를 유도하는 정책추진을 다짐한 것은 올바른 방향이라 하겠다.
그러나 그가 경제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달라고 촉구하면서도 정부 스스로의 의지표명이나 구체적 정책대안을 제시치 않은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시민생활의 안정을 위해 범죄와의 전쟁,심야영업 단속,불법주차 단속 등의 고삐를 계속 죄겠다는 그의 다짐은 반드시 이행돼야 할 사항이다.
특히 지자제선거에서 여측 표를 의식해 이런 정책의 시행이 흐지부지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임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
노대통령의 회견내용은 그러나 전반적으로 봐서 국민일반이 느끼는 총체적인 불안과 불만에 대한 현실인식과 치유책이나 미래에 대한 확고한 청사진의 제시가 미흡하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노대통령과 참모진이 경제·민생·치안 등의 현실을 지나치게 안이하게 파악하고 있지나 않나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노대통령이 정부의 책임론에는 둔감한 채 국민일반의 자제만 촉구한 점은 설득력이 약하고 설익은 대입제도 개선안의 제시는 오히려 혼란만 야기할까 우려된다.
대통령과 참모들은 국민에게 「사회적 합의」를 촉구하기에 앞서 정부정책의 실기와 무정견을 맹성하고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방책을 제시하는 노력에 보다 큰 비중을 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대통령은 국정 쇄신방향과 개혁의 기본 철학을 제시하지 않은 점을 미흡하게 생각하는 국민여론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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