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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전자·자동화 분야 어디까지 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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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최근 북한이 전자·자동화공업 등 첨단산업에 높은 관심을 쏟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자립적 민족경제건설 노선에만 주력, 현대 테크놀러지의 총아인 전자산업 등에는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
북한의 첨단산업 부진은 물론 미국 등의 대공산권 수출규제 조치 때문에 북한이 서방으로부터 하이테크를 유입하기 쉽지 않았던 사정에도 기인한다.
최근 북한은 합영사업에 힘을 쏟는다든지 일본 등과의 경제협력에 상당한 기대감을 갖고 있다. 이것도 자본도입 필요성과 함께 그 이면에는 첨단산업 관련 기술도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첨단산업 중 전자·자동화 분야에 대한 정책변화 및 최근 동향을 알아본다.

<최근의 동향>
배한은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전자·자동화공업 분야를 기계공업의 일부로 취급, 주로 산업용 전자기기 생산에 치중했다.
2차 7개년 계획(78∼84년) 때부터 반자동화 및 자동화 계획이 추진되기 시작했다.
전자·자동화 분야와 관련, 전자관·반도체소자·집적회로(IC) 등 자동화요소 및 계기생산의 목표가 수립됐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기초기술이 미흡한데다 전문인력 부족 상태가 심각했다.
85년 초 처음으로 IC 시제품이 생산됐고 그 뒤 대안·모란봉·원산 자동화요소공장 등 30여개 중·소형 공장에서 자동화부품을 생산하는 정도였다. 북한은 85년부터 기술계 단과대학으로 덕천 자동화대학, 함흥·청진·해주 전자-자동화대학 등을 신설, 인력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86년부터는 매년 「전국과학기술축전」을 열어 생산공정 자동화 방안 등을 전시하고 있기도 하다.
현행 3차 7개년 계획(87∼93년)에서는 전자·자동화발전 방침 아래 컴퓨터·IC·자동화시스팀·로봇·가전제품 등의 개발 및 생산이 주요과제로 떠올랐다. 계획기간에 첨단과학 연구개발을 비롯, 과학기술 분야에 국민소득의 3∼4%를 투자하고 있다.
87년부터는 3대혁명 소조원이 주축이 되어 각 공장·기업소에서 로봇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고도의 다기능 로봇이 아닌 용접·페인트 등 단순작업용 로봇과 자동절단기·운반기 등 간이자동화 장비가 대부분이다.
북한의 전자산업은 87년4월 유엔개발계획(UNDP)과 공동투자(6백만달러 규모)로 평성 반도체시험공장을 세우면서 전환점이 마련됐다.
이 공장은 과학원 산하 「전자공학연구소」의 시험공장이며 각종 IC개발·생산 및 기술인력 양성을 맡고 있다. 전자공학 연구소는 88년 6월에 대규모 IC소자 개발을 위한 종합계획을 마련, 각종 자동화부품 및 소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편 북한의 기계자동화분야 연구의 총본산은 과학원 산하의 「조종기계연구소」다. 이 연구소는 조종(제어의 북한식 표현)장치 연구실, 프린트배선(PCB) 연구실, 구동장치 연구실, 로봇 연구실, 로봇프로그램 연구실 등을 두고 있다.
북한의 전자·자동화공업의 발전정책과 관련, 88년은 중요한 한해였다. 3월의 당6기 13차 전원회의에서 「과학기술발전 3개년 계획」(88∼90년)을 마련하는 한편, 11월의 14차 전원회의에서는 「공작기계공업과 전자·자동화공업발전 방침」을 채택했던 것이다.
88년 8월에는 김정일이 과학원의 과학전시관을 시찰, 전자공학·금속공학·레이저공학을 비롯한 중요 과학분야를 전면 발전시킬 것을 지시했다. 그가 과학원을 시찰한 직후에 과학원은 UNDP의 협조로 「수치제어공작기계」(컴퓨터설비·레이저측정기·정밀측정기부착)를 96개 실험실에 설치함으로써 자동화부문에 박차를 가했다.
그 해 12월 북한은 정무원에 전자·자동화공업위원회(위원장 백세윤)를 신설, 정책을 뒷받침했고, 이 무렵 과학원 연구자들의 선동집회가 열려 자동화·로봇화·컴퓨터화 연구사업을 적극 추진키로 결의하기도 했다.

<전자 컴퓨터>
북한은 80년대 초에 일본의 히타치·캐논 기종 등을 도입하면서 컴퓨터 베이직언어와 카셋 보조기억장치를 사용하는 퍼스컴을 조립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컴퓨터가 기술습득 및 교육훈련용으로 사용되어 컴퓨터 부문의 초보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80년대 후반에는 소련·일본·체코 및 미국의 IBM사 등으로부터 퍼스컴을 비롯, 각종 소·대형 컴퓨터까지 다양하게 도입, 컴퓨터 기술분야의 발전에 주력했다.
작년에는 제5차 전국과학기술축전(1∼4월)에서 FM스테레오수신기용 선형IC가 개발되어 선보이는 등 전자부문에의 높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
작년 4월 초 제네바에서 열린 제18차 국제발명 및 새 기술 전람회에 북한은 11건의 발명품을 제출, 4건의 금메달을 비롯해 10건의 입상기록을 세웠다. 이중 전자분야의 「압전자기 박막발음체」 「화상특정분류기」 등이 주목을 끌었다.
8월에 열린 김일성종합대학 「교육과학성과 전시회」 및 「학생발명·창의고안 전시회」에서는 컴퓨터에 의한 강의체계, 「음성인식 동시 조종지능 로봇」 등이 선보였다. 물론 이같은 생산기술이 실제 제품생산으로 전환되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전자분야의 동향과 관련,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대한 관심도 높게 일고 있다.
작년 9월 평양 전자계산기운영회사에서 컴퓨터에 의한 한글문서편집 및 인쇄프로그램인 「창덕프로그램」을 개발했다.
12월 중순에는 평남 평성에서 북한 각지의 소프트웨어개발 분야 종사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전국프로그램경연」이 열렸다. 여기에는 각 분야에서 개발된 4백40여건의 프로그램이 제출됐다.
북한이 컴퓨터 소프트웨어개발 분야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실은 작년 12월에 중앙통계국 중앙계산소 프로그래머들에게 예술가 등에 붙여오던 「공훈」 칭호를 사용, 「공훈계산원」 칭호를 수여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작년 8월에는 북한·중국이 공동 운영하는 「컴퓨터요원양성센터」를 평양에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중국측이 각종 설비와 전문가를 파견하기로 합의한 이 센터가 건립되면 컴퓨터 응용 기술요원이 늘어날 전망이다.
북한은 작년 3월 평양 전자계산기운영회사 확장과 관련, UNDP의 도움을 받기로 합의, 하드웨어 증산의 길도 열었다.
작년 11월에는 대동강변에 컴퓨터 생산공장(6층 건물)도 건설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 공장은 셀로판 생산설비, 조립 및 측정설비, 온도·습도·채광·통풍 등의 자동조절 시스팀을 갖추게 된다.
북한의 전자산업에 대해 이 분야의 전문가인 국방대학원 김철환 교수는 『전자산업이 타산업보다 훨씬 낙후된 상태에 있다」면서 전자제품은 TV 등 가전제품을 조립 생산하고 있는 정도이며 반도체소자 기술수준이 미흡해 전자제품의 질은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편이라고 평가했다.
김교수는 『북한에서 87년부터 본격 생산되기 시작한 IC가 컴퓨터·로봇·수치제어공작기계 등 현대적인 전자장치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러나 90년대에 응용단계를 거쳐 2000년대 가서야 실용화될 것으로 보이며 아직은 남한의 70년대 중반 기술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계 자동화>
기계공업의 자동화에 관한 종합적인 성과는 88년 9월 평양에서 문 연 「공작기계 전시관」을 통해 첫 선을 보였다. 1백25종 1백30여대의 공작기계가 출품됐고 20여대의 로봇과 1백여점의 로봇용 부품들이 전시됐었다.
주요 품목은 컴퓨터 수치제어(CNC) 선반, 복합NC공작기계 (머시닝센터 = MC), 유연생산체계(FMS), 각종 로봇 등이었다.
특히 희천 공작기계종합공장, 4월3일공장, 10월5일 자동화종합공장 등이 제작한 함형유연가공셀(FMC), 축형FMC 등 FMS가 주목을 끌었다.
전시관에는 또 인쇄판 구멍뚫기 로봇, 관절형 용접로봇, 기계서비스로봇, 주사바늘구멍가공 로봇 등 각종 로봇과 「봉화호」 1백10밀리볼링반, CNC선 절단기, 반자동유압라인선반, NC평면연마반 등도 전시됐었다.
89년 하반기에는 국제연합공업개발기구(UNIDO) 지원 아래 수치제어기술관련 제품 및 운반·용접 로봇생산을 위해 2백36만 달러를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4월에는 평양에서 전국3대혁명소조 「로봇전시회」가 열렸다. 북한 경제 각 단위에 파견된 3대혁명 소조원들이 기술자·노동자들과 협력, 창안·제작한 1천4백80여대의 로봇과 6백여종 1천7백여개의 전자·자동화 부품·기구가 출품됐다.
「2월26일공장」의 3대혁명소조는 각종 윤전기피스톤가공 FMS를, 「평양영예군인봉제공장」은 볼펜 자동조립기를, 「서평양기관차대」는 관절형 스폿 용접로봇을 각각 출품했다.
또 「만경대 공작기계공장」의 제도로봇, 「희천 공작기계공장」의 운반용 로봇, 「3월25일공장」의 창고관리 로봇, 「김종태 전기기관차 연합기업소」의 플래즈머 절단로봇(특별히 프로그램을 짜지 않고도 고정장치에 제품견본을 붙여주면 같은 모양으로 수십mm 철판 절단) 등도 눈길을 끌었다.
현재 「만경대 공작기계공장」은 NC방전가공반 등을 제작, 공작기계의 자동화에 앞정서고 있다. 「2·8비날론연합기업소」에서도 용접·포장·운반 로봇을 생산공정에 활용하고 있으며 「승리자동차 종합공장」에선 89년 확장공사 이후 엔진 분공장의 자동화·로봇화·컴퓨터화를 추진해 왔다.
「전국경공업대회」가 작년 6월초에 열린 다음부터 경공업제품 생산에서도 생산라인 전산화·로봇화가 강조되고 있다.
북한의 자동화부문에 대해 김철환 교수는 『산업기계와 자동차·무기 등에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IC 및 컴퓨터 기술이 연계 개발되고 있으나 대개 반자동화 또는 중앙지령식 원격조종방식에 불과한 수준』이라면서 『고급자동공작기계는 전자산업기술 및 정밀가공설비가 미흡해 자체제작이 어려운 형편이고 전자기기나 유압장치 등 중요한 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김교수는 『북한의 수치제어공작기계·산업로봇 등 산업자동화는 상당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고 전제하고 『최근에 선진 자동화기술과 전자제어를 이용한 자동화공장을 건설, 운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북한은 소련과의 불화에도 불구, 89∼91년 과학기술협조계획에 따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작년 8월 평양에서 열린 과학기술통보 전시회가 단적인 예다. 소련과학기술통보 연구소 주도로 열린 이 전시회에는 컴퓨터를 도입, 제작한 터빈·소형 접속헤드가 있는 컬러브라운관, 레이다·전기기구복사물 등 견본이 선보였다.
북한 최대의 종합방직공장인 「평양방직공장」이나 「개성방직공장」이 소련의 기술·설비지원으로 시설 현대화를 추진 중이다.
북한은 중국과 87∼97년간 장기과학기술협조 합의에 따라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87년 10월에 과학원 공동연구집행 의정서를 채택, 전자공학·기계공학 분야에서 연구협력이 진행 중이다.
그밖에 북한 전자자동화공업위는 작년 12월 쿠바 전국 자동화체계 및 컴퓨터기술위와 협조 의정서를 채택하기도 했다.
한편 전자·자동화 등 12개 학부를 설치한 북한 최대의 공과대학인 김책공대는 89년 5월부터 교육기자재 현대화 계획에 따라 새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청년들의 첨단산업 부문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작년 8월께부터 사노청 주도로 「대학생 과학탐구상쟁취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작년 12월 25일에 시작, 올 4월까지 북한 전역에서 「전국과학기술축전」(제6차) 행사가 벌어지고 있는데 전자·자동화 분야의 새 기술과 제품이 등장하고 있다.

<용어해설>
▲수치제어(NC) 공작기계 = 가공조건·공구경로 등 생산데이타를 입력한 NC장치를 통해 자동제어로 작동되고 지령된 가공을 행하는 기계. NC가공으로 한대의 공작기계를 이용, 다양한 부품의 자동가공 가능.
▲유연생산체계(FMS) = 기계가공 및 조립에서 종래의 소품종 대량생산형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에도 유연히 대응할 수 있게 한 생산체계. 대개 △NC공작기계, 특히 복합NC공작기계 △산업용 로봇과 파렛(가공대상물 적재판) △가공대상물 반송공정 △컴퓨터로 물품 입·출고를 자동체크하는 자동창고 △각종 자동화 계기를 관리제어하는 컴퓨터 등으로 구성.
▲유연가공셀(FMC) = FMS의 기능을 지닌 최소단위 체계. 통상 NC공작기계와 산업용 로봇을 조합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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