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새롭게 아시아를 보라/방한하는 가이후총리에의 당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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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가이후 일본총리가 9일 방한하여 수뇌회담을 갖게 된 것은 외교적인 면에서 보자면 최근의 한반도 주변정세나 양국관계의 미래와 관련해 필요하고도 바람직한 일이다.
마땅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할 가이후총리의 서울방문을 우리가 의례적인 환영의 말보다 이처럼 그 중요성만 앞세워 강조하는 것은 한일관계를 단순한 관계로만 보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자주 만나 해결하고 청산해야 할 일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가이후 총리의 방한을 보는 시각은 한일 양국의 입장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일관계의 안정은 앞으로의 국제사회 특히 아시아 사회에서 기초를 다져나가는 발판이 될 수 있다.
한국방문에 이어 곧 뒤따르게 될 가이후 총리의 동남아시아 순방은 앞으로 새로운 국제질서에 따라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적극적 역할을 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우리는 본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에서는 일본의 그러한 목표를 이룩하기 위한 한일관계의 안정이 과거와 같은 일본의 배타적 이익추구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가이후 총리의 이번 한국방문에서 우리는 세가지 문제를 분명히 매듭짓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첫번째는 그동안 항상 끝난 것처럼 보이면서도 계속 두 나라 관계의 앙금이 되어온 역사적 과거청산문제다.
이번 방문을 계기로 『불행한 과거를 일단 매듭짓겠다』는 일본의 의향은 가이후 총리가 파고다공원을 찾아가 유감의 뜻을 표하겠다는데서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파고다공원을 찾는다는 단순한 상징성만으로는 과거가 청산된다고 믿지 않는다.
재일교포의 법적지위문제 해결을 비롯,앞으로의 한일관계를 풀어 나가는 일본의 정책에서 우리는 일본의 과거 청산의 진의를 보고자 한다.
두번째는 일본의 북한과의 접근문제다. 이미 여러차례 언급했듯이 우리는 북한·일본간의 접근을 북한을 국제사회의 무대로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환영해 왔다. 다만 일본의 대 북한 지원이 한반도 내부의 경쟁과 분열을 조장하지 않고 남북한간 대화에 도움을 주며 평화분위기를 정착시키는데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부에서 우려하듯이 일본의 경제영역을 확대하고 남북한을 이용해 정치·경제적 이익만 확보하려는 의도에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북한과의 접촉은 남북한관계의 발전에 맞추어 진행되기를 우리는 당부하고자 한다.
세번째는 이러한 모든 문제를 미래지향적인 구도에서 풀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 일방의 당장의 이익보다는 지역 공동의 번영과 호혜적인 협력의 바탕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테면 최근 심화되고 있는 한일간의 심각한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산업·기술협력등이 긴요한 문제라는 데서 일본이 적극적인 협력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번 수뇌회담이 이러한 문제들에 관해 종래처럼 원칙상의 합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실천의지를 보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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