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 「중앙 문예」 시조 부문 당선작|시조 『나의 발원』 양영길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시조의 르네상스시대가 오고 있는 것일까. 응모작품 전체를 꼼꼼하게 살펴 본 결과 시조의 새 지평을 열고 나갈 잠재세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응모작 대부분이 높은 문학적 성취도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러한 고무적인 현상은 시조중홍운동을 펼치고 있는 중앙일보의 공적으로 돌려도 좋을 것이다.
당선권에 오른 작품은 모두 4편이었다. 양영길의 『등꽃이 피는 밤』과 『나의 발원』, 이종문의 『노을이 있는 서정』과 강동구의 『바다의 꿈』으로 압축되었다.
강동구는 신인다운 패기와 재기발랄한 상상력, 언어를 다루는 용병술 등이 뛰어났다. 그러나 산뜻하고 이지적인 감수성이 내면적 깊이를 거느리고 있지 못해 그만 시적 존재의 가벼움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종문은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공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그것이 오히려 흠집 작용을 했다. 「부처님/고무신 속에/가부좌 튼 저녁 노을」 같은 예스러운 발상법은 무엇인가 낡았다는 생각, 무엇인가 우리 시조가 자꾸만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게 했다.
결국 양영길의 『나의 발원』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나의 발원』은 제목이 진부하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지만 시조의 행간 속에 철학적 깊이랄까, 사유의 무게(질량감)가 실려 있었다.
촌철살인의 비범함이나 당찬 목소리는 발견할 수 없었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고 담담하게 세상을 읽어 내려간 그 문학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기로 했다.
시조의 르네상스시대를 예비할 당당한 재목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