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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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구밖 나와 보면/노을 깔린 철조망/앙가슴 찢기운채/엉엉 소리쳐 댄다/비정의 세월 거쳐/굳어버린 들/장벽아래 노려보던 슬픔/노여움 피뿜고/꽃으로 흩날렸던 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네 곱의 시간/이제 너와 나 가슴사이/가로 막힌 골짜기로/언젠가는 종이 울려/파랗게 넘칠게다/입깨문 응시의 들에/불어오는 바람소리/훤히트여 보인다.』(김효동의 시 『철조망』에서)
철조망은 원래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적군의 접근이나 침입을 저지하고 그 행동을 방해하기 위해 진지부근에 설치하는 유자철선의 장애물이다.
그러나 그 군사적 목적의 철조망이 우리에게는 분단과 불신,적대감으로 상징되는 의식의 한 부분처럼 되었다. 돌이켜 보면 그것은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조망이 우리의 생활주변에 처음 등장한 것부터가 그렇다. 일제의 식민통치는 총과 칼 그리고 철조망으로 대변된다. 얼마나 많은 우리의 애국지사들이 그 철조망속에서 갖은 고초를 겪었던가.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도 결국은 휴전선에 철조망을 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반도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길이 1백55마일,너비 4㎞의 이 휴전선 비무장지대는 아마 이 지구상에서 가장 살벌한 철조망지대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동서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도 원래는 철조망으로 시작되었다. 1961년 8월 어느 일요일 새벽 동독 군인들은 서베를린 시민들이 단잠을 자고있는 사이에 철조망을 쳐버린 것이다.
그 베를린 장벽도 이제는 헐렸는데 우리의 휴전선 철조망은 아직도 이 겨울날씨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휴전선의 철조망보다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게 전국 해안지대에 쳐놓은 철조망이다.
특히 풍치 좋은 동해안을 여행 하다가 바다를 가로 막은 철조망을 대하노라면 이땅에 살고 있다는게 새삼 서글퍼진다. 모처럼 찾은 여행객이 그럴진대 이곳에 생업을 두고 있는 어민들은 오죽이나 할까.
다행히도 동해안의 일부지역 철조망이 곧 철거된다고 한다. 새해 벽두에 무엇보다도 반가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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