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전 노후 대비 가능" 한국 44%, 미국 8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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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40대 근로자가 정년(만 57세 기준)까지 번 돈을 평균적으로 쓰고 저축하면 노후 생활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까.

본지 특별취재팀이 20개 업종에 대해 조사한 결과 12개 업종에서 일하는 40세 가장은 정년까지 일해도 은퇴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업종의 40세 근로자가 받는 평균 연봉, 가구당 평균 재산, 40대의 평균 소비성향, 4인 가족 중 한 명만이 돈을 버는 경우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다. 평균적인 40세 보통 사람이 노후 생활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업종은 금융.광고.자동차 등 8개 업종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나마 노후 생활자금은 여행 경비 등을 뺀 기본생활비만 계산한 것이다. 조응래 삼성생명 웰스매니지먼트팀장은 "이번 조사 결과는 노후에 기본적인 생활만 한다는 가정하에 산출된 것"이라며 "국내외 여행을 하고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으며 각종 경조사와 모임에 참석하는 등 여유있는 생활을 가정했을 때는 모든 업종에서 평균적으로 3억~5억원의 자금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한국인의 노후 대비는 부실하다. 본지는 지난달 여론조사회사인 유니온연구소에 의뢰해 한국(700명).홍콩(500명).독일(500명)의 40~50대를 대상으로 노후 대비 상황을 조사했다. 아시아의 고소득 지역인 홍콩, 사회보장이 한국보다 잘 돼 있는 독일과 한국 상황을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노후 자금을 준비한다는 한국인 응답자는 57%에 불과했다. 반면 홍콩에선 65%, 독일에선 70%가 '준비한다'고 답했다. 또 은퇴할 때까지 노후 생활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의 비율은 44%였다. 홍콩에선 이 비율이 29.6%로 뚝 떨어지고 독일은 48.8%였다. 노후자금을 준비한다는 비율과 비교하면 실제 노후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한국에서 높은 편이었다. 미국의 경우 은퇴자협회(AARP)가 지난 4월 178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노후자금을 모을 수 있다는 응답이 85%로 매우 높았다.

하지만 노후 생활자금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 봤느냐는 질문에 한국인의 34.6%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홍콩(30.8%)보단 높지만 독일(48.6%)보다 낮았다. 사회보장이 잘된 편인 독일인이 한국인보다 더 꼼꼼하게 노후 생활자금을 따져보고 있으며, 노후 준비를 하는 사람도 더 많았다는 얘기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노후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고령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어 머지않아 고령 빈곤층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 중 46%의 소득이 기초생계비에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조사대상 가구의 절대 빈곤층 비율(19%)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규모다. 앞으로 고령층 인구 비중이 커지면 고령 빈곤층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조용수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고령자는 일단 빈곤 상태로 진입하면 탈출하기가 어렵다"며 "앞으로 노후 준비를 하지 않으면 장수를 축하할 처지가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팔용 PCA생명 전무는 "많은 사람이 노후에 대해 걱정만 하면서 이미 늦었다고 생각해 포기하곤 한다"며 "하루라도 늦어질수록 노후 준비 금액이 그만큼 늘어나는 만큼 지금 당장 은퇴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창규.최준호.고란(이상 경제부문).김영훈(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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