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첫 노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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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신미 년의 첫 새벽은 연탄재를 가득 실은 청소부의 손수레로부터 밝아온다. 노랑 방한복으로 덮은 그의 굽은 어깨로부터 밝아온다. 마주잡은 아내의 터진 손으로부터 밝아온다. 손수레 소리만큼만 밝고 아직 캄캄한 골목길, 손수레 소리를 따라 이 집 저 집 불이 켜지고 구멍가게는 삐거덕거리며 가게문을 열리라. 때맞추어 길을 향해 난 작은 쪽문이 열리고 젊은 아낙네가 나와 콩나물와 두부를 산다. 첫 새벽은 오늘도 쉬지 못하고 일터에 나아야 하는 남편을 의해 새벽밥을 짓는 젊은 아낙네의 건강한 팔뚝으로부터 밝아온다. 희고 고울 목덜미로부터 밝아온다.
이윽고 새벽 장을 보러 아는 아낙네들을 태우고 기차가 갯벌을 달린다. 뿌옇게 들판이 밝아오다가 마침내 해가 뜨고, 그리하여 신미 년의 첫 햇살은 비린내와 땀내에 전 그 차장부터 들여다본다. 플래스틱 자배기에 담겨 아직도 살아 파닥거려는 바닷고기의 비늘로부터 어루만진다. 그 맑고 아름다운 햇살에 아낙네들은 잠시 아들의 학비며, 서울로 간 딸로 인한 시름을 잊고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는 차상 밖 마을을 내다본다. 첫 햇살은 이미 거기까지 아 있어, 담 밖에서 서성거리다가 새해의 농사일을 걱정하며 돼지우리를 들여다보는 늙은 농투성이의 굵고 깊은 주름살 속속들이 가서 박힌다. 버려진 배추밭, 무밭까지 가서 박히다가 군불을 지피는 늙은 아낙네의 굽은 등을 감싸다.
하지만 신미 년의 첫 웃음은 고기를 가득 싣고 들어오는 배에서 먼저 들린다. 바닷바람에 그을은 검은 얼굴들에는 피로의 빛이 역력하지만, 뱃전에 와 부딪치면 햇살은 보석처럼 부서져 파도를 향해 달려가고, 금빛으로 치장한 바다가 함께 기쁨의 함성을 지르지 않느냐. 배가 닿으면 기다리던 갯마을 젊은이, 늙은이, 여자, 남자 가릴 것 없이 달려들어 노래로 손을 맞추며 그물을 당긴다.
노래는 갯마을을 덮고 마침내 웃음이 되어 바다를 덮는다. 그리하여 그 노래와 웃음은 햇살을 타고 바람을 타고 퍼져 들판을 덮고 도시를 덮는다.
신미 년의 첫 노래는 갯마을로부터 들린다. 온 나라를 힘으로 넘치게 하고 기쁨으로 가득 차게 하는 첫 노래는 바다로부터 들린다.
은빛 비늘처럼 반짝이는 그 노래는 너와 내가 아닌 우리를 찾는 순박한 얼굴들의 귓전에 머문다. 새해의 첫 노래는 그리하여 우리에게 자연대로 순수하고 착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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