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시작된 태풍의 계절…달궈진 바다가 ‘슈퍼 태풍’ 키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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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마와리 위성이 포착한 제1호 열대저압부의 모습. 필리핀 앞바다를 지나 북상 중인 열대저압부는 제1호 태풍 에위니아로 발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RAMMB/CIRA/CSU

일본 히마와리 위성이 포착한 제1호 열대저압부의 모습. 필리핀 앞바다를 지나 북상 중인 열대저압부는 제1호 태풍 에위니아로 발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RAMMB/CIRA/CSU

올해 들어 유독 잠잠했던 태풍이 뒤늦게 활동을 시작했다. 올해 첫 태풍이 될 것으로 보이는 열대저압부가 세력을 키우며 북상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24일 오후 9시 현재 제1호 열대저압부(TD)는 필리핀 세부 동쪽 약 360㎞ 해상에서 시속 34㎞의 속도로 북서진하고 있다. 열대저압부는 태풍으로 성장하기 이전 단계의 열대저기압을 말한다. 열대저기압 중심부의 최대풍속이 17m/s 미만이면 열대저압부, 이보다 커지면 태풍으로 분류한다.

제1호 열대저압부는 필리핀 해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점차 세력을 키워 이르면 25일에 올해 첫 태풍인 ‘에위니아(EWINIAR)’로 발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에위니아는 미크로네시아 연방에서 제출한 태풍의 이름으로 전설 속 ‘폭풍의 신’을 뜻한다. 27일에는 중형급 태풍으로 성장하겠고, 이후 일본 오키나와 남쪽 해상을 지나 북동쪽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공상민 기상청 예보분석관은 “태풍으로 발달하더라도 아열대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서 26일경에 전향을 해서 일본 남동쪽 해상으로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쪽에는 영향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첫 태풍 늦어진 이유…여름철 태풍 발생도 적을 듯

태풍은 보통 여름철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5월 중순까지 태풍 한 개도 발달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열대 서태평양 해역은 겨울철에도 바다 온도가 따뜻하기 때문에 1월에도 종종 1호 태풍이 발생한다. 지난 30년(1991~2020년) 동안 5월까지 평균 2.5개의 태풍이 발생했다. 1951년부터 지난해까지 73년 동안 5월까지 태풍 소식이 없었던 건 6번밖에 없다.

태풍 발생이 늦어진 원인을 그린 모식도. 열대 서태평양에 고기압이 형성되고 대류활동이 약화되면서 태풍 발생을 억제했다. 기상청 제공

태풍 발생이 늦어진 원인을 그린 모식도. 열대 서태평양에 고기압이 형성되고 대류활동이 약화되면서 태풍 발생을 억제했다. 기상청 제공

올해 태풍 발생이 늦어진 건 인도양의 높은 해수면 온도 탓이 크다. 인도양의 수온 상승과 대류 활동이 증가에 따른 상승 기류가 서태평양의 대류 활동을 감소시켜 태풍 발생을 억제한 것이다. 또, 엘니뇨 시기에는 서태평양에 고기압성 순환이 발달해 대기가 안정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태풍이 잘 발생하지 않는다.

기상청은 이런 흐름이 태풍 시즌인 여름에도 이어질 것으로 봤다. 여름철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태풍이 평년(여름철 평균 2.5개)과 비슷하거나 적을 확률을 각각 40%로 예측했다. 태풍의 진로도 한반도를 비껴갈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기상청은 “태풍은 북태평양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중국 남부로 이동하거나, 대만 부근에서 전향해 일본 쪽으로 이동하는 경로가 우세할 가능성이 높겠다”고 전망했다.

달궈진 바다가 불안 요소…숫자 적어도 파괴력은 더 세다

제6호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부산지역에 태풍경보가 발효된 지난해 8월 10일 부산 기장군 한 도로변 방파제에 거센 파도가 몰아쳐 차량을 덮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제6호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부산지역에 태풍경보가 발효된 지난해 8월 10일 부산 기장군 한 도로변 방파제에 거센 파도가 몰아쳐 차량을 덮치고 있다. 송봉근 기자

하지만, 불안 요소도 남아 있다. 바로 한반도 주변 바다가 역대급으로 달궈져 있다는 것이다. 여름철 바다 수온 역시 평년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태풍의 에너지원인 바다 수온이 크게 오른 상태에서 태풍이 한반도로 가까이 올 경우, 강도가 이전보다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에도 국내에 영향을 준 태풍은 제6호 태풍 ‘카눈’ 1개뿐이었다. 하지만, 따뜻해진 바다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으면서 강한 세력을 유지한 채로 한반도를 관통해 큰 피해를 남겼다.

실제로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중위도로 북상하는 태풍의 지속 시간이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는 태풍이 아열대 해역에서 생성된 이후 북상할 때 약해지지 않고 그 강도를 계속 유지해 한국이나 일본의 해안 지역으로 상륙할 확률이 높을 수 있다는 뜻이다.

문일주 제주대 태풍연구센터장은 “현재 우리나라 주변 해역뿐 아니라 태풍의 경로인 필리핀 앞바다까지 수온이 엄청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며 “태풍의 발생은 적을 수 있지만 한번 발생해 우리나라로 오는 태풍은 강하게 발달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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