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日 속좁은 모습…지소미아 종료, 여론조사 보고 옳다 확신" [文 회고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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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좁은 모습” “도량 없는 나라” “추락하는 나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17일 공개된 회고록 『변방에서 중심으로』 중 대일 외교를 다룬 12장 「다시는 지지 않겠습니다」에서 이런 표현으로 강제징용 관련 사태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비판했다.

2019년 6월 28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6월 28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2019년 7월)에 대응해 한 달여 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할 당시 “여론조사 결과 우리의 판단이 옳다는 확실한 뒷받침을 얻게 됐다”고 밝혔다. 청와대 지시로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와 유지를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종료’ 응답이 압도적이었다면서다.

문 전 대통령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판단을 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었다”면서도 “한·일 관계뿐만 아니라 한·미·일 삼자 사이에 상당히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에 국민들의 여론까지 듣고 최종 판단을 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중요한 외교안보 정책을 여론조사 결과에 기대 결정했다는 뜻으로 인식될 우려가 있다. 당시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미국이 큰 실망을 표하면서 정부가 국내정치적 맥락에서 대응하다 동맹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일본 요구 받아들인 윤 정부, 그건 굴욕”

문 전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강제징용 문제의 해법으로 내놓은 ‘제3자 대위변제안’도 비판적으로 봤다. “일본이 요구한 유일한 해법은 한국이 책임지라는 것”이었다며 “윤석열 정부가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것은 굴복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제3자 대위변제안은 당초 문희상 국회의장 등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나온 안이었다”는 여권의 반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3월 당시 정진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제3자 대위변제 아이디어는 우리 아이디어가 아니고 민주당의 아이디어다. 그것이 마지막 해법이라는 인식에서 우리가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문 전 의장은 지난해 3월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입법으로 해결하자는 게 내 취지였다”면서도 “실질적으로 제3자 대위변제 방식밖에 배상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제1세션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제1세션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전 대통령은 “당시 일본 경제계 등이 한·일 기업이 참여하는 공동 기금안을 아이디어(해법)로 냈고, 우리 정부는 ‘피고 기업들이 참여하거나 별도의 사죄 의사표시를 한다면 피해자인 원고들을 설득해볼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며 “그런데 일본 정부는 실무자 선에선 긍정적인 논의와 의견 접근을 보이다가도 결국 총리실로 올라가면 요지부동 완강하게 거부한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했다.

이와 관련, 미국의 관여도 언급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이 강제징용 갈등을 한·미·일 안보 협력을 해치는 사안으로 판단해 '미국의 공동기금 참여' 등을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서려고 했다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그 해법을 제안한 커트 캠벨 백악관 인도태평양조정관에게 물었더니 아직 일본하고 협의는 안 됐지만 우리만 오케이 하면 일본이야 금방 설득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며 “그런데 일본은 그 제안도 거절했다”고 말했다.

“일본 수출규제는 우리의 완승”

문 전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규제를 사전에 파악해 “초기부터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고도 언급했다. 당시 노영민 주중 대사와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사전에 관련 정보를 보고했다며 “이건 기록으로 처음 남기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또 일본의 반도체 소재 3개 품목(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에 대한 수출 규제에 대응해 “우리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은 크게 성공했다”며 “일본의 수출규제는 우리의 완승, 일본의 완패로 끝났다”고 자평했다.

반도체 칩 뒤로 한국과 일본의 국기가 맞닿아 있다. 셔터스톡

반도체 칩 뒤로 한국과 일본의 국기가 맞닿아 있다. 셔터스톡

다만 관련 업계에선 “정부 대책이 실질적인 성과가 없었다”는 반론도 나온다. 한국무역협회 통계에 따르면 불화수소의 경우 대일 수입액이 수출규제 발표 직후인 2019년 7월 이후 급감했지만, 문재인 정부 5년차인 2021년부터 반등(전년 대비 3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수입량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반도체 제조 장비 수입의 경우 오히려 2021년에 전년 대비 44%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문 전 대통령은 문 정부의 외교 방향을 ‘균형외교’라고 지칭하면서 “우리 정부는 균형외교에서 역대 최고의 성과를 냈다”고 강조했다. “한·미 동맹이 공고했고, 한·일 관계가 정치적으로 껄끄러운 부분이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나 민간 차원의 교류에선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돌아갔고, 중국 및 러시아와 좋은 관계, 북한과도 평화를 유지했다”며 “이런 때가 역대 정부에서 없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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