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와인 향, 따스한 LP 음향…둘 다 취하네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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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0호 21면

이나리의 핫 플레이스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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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서울의 미식 트렌드를 휩쓸었던 내추럴 와인 붐이 가고, 와인은 어느새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며 이전보다 편하게 즐기는 문화가 됐다. 와인 바 역시 특색 있게 진화하고 있는데, 복잡한 동대문 거리를 지나 아담한 성곽길을 걷다 보면 만나는 작은 바 ‘클로스’(사진1)도 그런 곳 중 하나다.

편안한 멜로디의 LP 음악과 내추럴 와인, 세련되면서도 따스한 분위기가 어우러진 이곳은 감각 있는 기획자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한 곳이다. 클로스를 운영하는 오수형 대표는 패션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퇴사 후 음악과 와인을 콘셉트로 바를 열었다. “해외 출장을 많이 다녔어요. 도쿄, 파리, 코펜하겐 등의 도시에서 퇴근길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가볍고 캐주얼하게 내추럴 와인을 즐기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죠. 클로스는 그러한 기억을 바탕으로 제 공간에 친구들을 초대한다는 느낌으로 만들었어요.”

사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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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다녀간 손님마다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매력은 바로 공간에 흐르는 LP 음악이다. 좋은 분위기의 장소에는 반드시 좋은 음악이 있다고 생각한 오 대표는 클로스를 오픈할 때 인테리어뿐 아니라 음향에도 좀 더 신경을 썼다. 예를 들어 천장이 높으면 소리의 울림이 좋고 풍부해지며, 사람들의 대화 소리도 덜 웅성거린다. 공간 곳곳에 소음을 흡수할 수 있는 커튼과 나무 가구들을 활용한 것도 그가 고민한 작은 장치들이다. 덕분에 레트로한 트렌드를 선호하는 20대는 물론 느긋하게 음악과 대화를 즐기려는 40대 직장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이곳을 찾는다.

클로스에서 선곡하는 음악은 1950~60년대에 녹음된 편안한 느낌의 재즈나 보사노바, 80~90년대의 가요들이 대부분이지만 날씨에 따라, 머무는 손님들에 따라, 또는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선곡도 자연스레 달라진다. 매장 한쪽을 빼곡하게 채운 빈티지 LP들을 구경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요즘에는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이나 좋은 블루투스 스피커도 많아졌지만, 아날로그 시대에 녹음된 곡들은 아날로그 방식으로 플레이했을 때 가장 듣기 좋은 것 같아요.”

대표 메뉴는 공간과 어우러지는 잔잔한 맛과 향의 내추럴 와인, 개성 있는 작은 스몰 디시들이다. 멜론&브라운치즈(1만5000원·사진2)는 달콤한 멜론 위에 캐러멜 풍미의 짭조름한 치즈를 더한 클로스의 시그니처 메뉴. 여기에 글라스 와인 한 잔 또는 여럿이 나누는 내추럴 와인 한 병이 있다면 저마다의 고단함도 따스한 멜로디와 함께 어느새 스르륵 사라질 것 같다. 글라스 와인 1만8000원, 내추럴 와인은 병당 7만원대부터.

글 이나리 출판기획자, 사진 김태훈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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