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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 천만관객 눈앞…신화는 대중의 물결에서 나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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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9호 20면

오동진의 전지적 시네마 시점

2022년에 나온 ‘범죄도시2’에서 마석도 형사(마동석)는 동기이자 상관으로 ‘전 일만 하는 반장입니다’를 내세우고 다니는 전일만 반장(최귀화)과 함께 베트남 도박장을 급습한다. 물론 단 둘이서. 막아서는 ‘몸집’들을 마동석은 빅펀치 한방과 업어치기로 날려 버린다. 깡패들은 바닥에서 끙끙대면서도 다시 덤비려고 한다. 그런 그들을 두고 전 반장은 이렇게 말한다. “어 어 그냥 누워 있어. 가만히들 있으라고.” 이건 마치 요즘 파죽지세의 분위기로 개봉 3주차에 천만 관객을 목전에 두고 있는 ‘범죄도시4’가 극장가에 걸려 있는 다른 영화들을 두고 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어, 어, 그냥 누워들 있으라고. 경쟁할 생각 하지 말고 가만히들 있으라고.’ ‘범죄도시4’는 전국 스크린 3400개 중 90%에 해당하는 3000개 정도에 걸려 있다. 한국 극장은 온통, 아니 오로지 ‘범죄도시4’ 포스터로만 뒤덮여 있다.

전국 스크린 3400개 중 90%서 상영

천만 관객의 신화는 이제 더 이상 신화라고 할 수 없다. 2003년 첫 천만 영화로 기록돼 있고 이제는 대다수 젊은 관객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 된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 때의 천만 관객은 신화 그 자체였다. 이 즈음 천만 관객 영화로 꼽히는 ‘태극기 휘날리며’나 ‘왕의 남자’도 신화적이고 전설적인 측면이 작동했다. 언제부턴가 천만 관객 영화를 두고 관객이 먼저 움직인 것인가, 아니면 영화가 의도적으로 스크린을 독점한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많지만 이때, 그러니까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때는 분명히 관객이 먼저 움직였다. 그래서 신화가 됐다. 그런데 요즘은 극장이 먼저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더 이상 신화라고까지 부르지 않는다.

관객 천만 넘은 한국 영화

관객 천만 넘은 한국 영화

당시 ‘실미도’의 배급을 맡았던 시네마서비스의 김인수 상무가 했던 말이 똑똑하게 기억이 난다. 관객 수가 600만에 다가설 때였다. “이제 영화가 어디로 갈지, 얼만큼 갈지 모르겠어. 이제 아무도 몰라.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 ‘실미도’의 질주는 약 1100만의 관객을 모으며 맹위를 떨쳤지만 곧 이어 개봉된 ‘태극기 휘날리며’가 1170만, ‘왕의 남자’가 1200만을 모으며 상황을 더 밀고 나갔다. 화무십일홍. 영화를 만든 강우석·강제규·이준익 감독은 곧바로 스타 감독으로 떴지만 지금 세대들에게는 옛날 감독, 지금은 영화를 잘 만들지 않는 감독, 비(非)흥행감독으로 분류된다.

영화가 천만 관객을 모아 가는 작금의 과정을 보고 있으면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논쟁의 추이를 따라간다. 일부에서는 지나친 독과점이라며 국가가 여기에 일정 정도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크린 상한제를 두고 한 영화가 일정 수 이상을 가져가지 말아야 하며 다른 영화에도 비율대로 스크린을 할당하고 극장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와 다른 한편에서는 영화 흥행은 철저하게 경쟁의 산물이며 상업성이 높고 대중들이 지지하는 한 해당 영화가 스크린 수를 얼마나 차지하느냐는 온전히 시장 경제의 법칙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느 쪽이 옳은가 그렇지 않은가는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맞는 경우는 없다. 봉준호의 영화 ‘괴물’(2006)이나 ‘변호인’(2013) ‘기생충’(2019)처럼 다분히 사회비판적 시선이 담겨져 있는 영화가 천만을 모아 갈 때 반(反)독점주의자들의 목소리는 그리 크게 터져 나오지 않는다. 이때에 그들은 그 영화들이 스크린을 독점하기 보다는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결과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국제시장’(2014)이 천만을 넘거나 ‘인천상륙작전’(2016)이 700만 관객을 넘겨 천만길목으로 가려 할 때는 소위 ‘국뽕’영화를 극장들이 미리 성곽을 쌓고 이들을 지켜줬기 때문이라고 폄하하는 경향을 보인다. 천만 관객을 놓고 벌어지는 상이한 편향들은 지난 20년간 평행선이다. 천만 관객 논쟁은 영화에서 정치로, 산업적 분석에서 사구체(사회구성체) 논쟁으로 이동한다.

일반 대중들은 잘 모르겠지만 국내의 메이저 투자배급사들 곧 CJ엔터테인먼트와 플러스엠,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시작은 영화 제작이나 투자가 아니었다. 이들 역사의 시원(始原)은 강변CGV와 코엑스 메가박스 그리고 명동 롯데시네마였다. 극장은 투자배급사의 하위에서 복무하는 것이 아니다. 투자배급사가 만들어진 것은 이들 극장에 원활하게 영화를 붙여 주며 능숙하고 효율적으로 극장이 돈을 벌게 해 주기 위한 것이다. 투자배급사와 멀티플렉스의 관계는 수평적이거나 오히려 반대의 주종 관계이다. 그건 마치 수많은 세계 영화제들이 필름마켓보다 먼저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칸영화제와 칸필름마켓, 베를린영화제와 베를린필름마켓) 사실은 많은 영화 ‘업자’들이 자신들의 상품(=영화)을 팔기 위해 시장(=마켓)을 만들고 여기에 사람들을 모이게 할 요량으로 축제(=영화제)를 만든 것과 같은 이치이다. 대부분의 영화제를 영어로 말할 때 페스티벌이란 단어를 쓰는 이유이다.

인류 역사가 자본주의로까지 흘러 온 데에는 늘 돈이 먼저였다. 돈이 사람을 움직이고 돈이 문화를 움직였다. 천만 관객의 논란에 있어서도 돈의 법칙을 무시하는 건 다분히 이상주의적이다. 대기업 영화사들이 지나치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난 20년간 한국 영화 산업이 K콘텐트를 글로벌 수준으로 키우고 해외시장을 확장한 것은 대기업 영화 자본의 순기능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대기업 영화사를 비판하면서도 대다수 영화인들이 대기업 영화사들과 어떻게든 작품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이율배반의 문제가 아니고 다분히 생존의 문제이다. 결국 조율과 밸런스, 공존의 문제라는 얘기이다.

다들 ‘정도껏 하면 된다.’ 그러면 갈등을 줄일 수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천만 관객 영화는 신화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신좌의 게임’을 벌일 수 있다. 민심을 먼저 얻는 사람이 선거에서 이기면 다들 기적 같은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관객을 먼저 얻는 영화가 천만 관객을 하는 것이야 말로 기적이자 신화다. 4500만 인구에서 한 영화가 천만 이상을 모은다는 것은 실로 비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명량’(2014)이 1700만을 모은 것은 거의 기네스감이다.

K영화 흥행, 대기업 영화자본 순기능 작동

천만 관객 영화를 놓고 벌어지는 논쟁과 대립, 갈등 역시 코로나를 기점으로 크게 변화했으며 비판과 분석의 기준점이 이동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일종의 ‘기준점 이동 증후군’ 같은 것이다. 지금은 비판의 수위가 격랑까지는 아니다. 찰랑이는 물결 수준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지난 코로나 기간 3년간 전국 극장 상당수가 도산했으며 그나마 간신히 버틴 것은 멀티플렉스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이 경험한 것은 티켓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는 것인데, 극장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부담을 관객들이 일부 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극장이 살아야 영화가 살고 대중들이 그 영화를 즐기며 살 수 있다는 순환논리가 생성됐다. 그것이 스크린 독점으로든 아니든 천만을 모아 극장이 명맥을 유지하는 한, 관객들은 어느 정도 용인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뉴노멀 시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주요 현상 중 하나다.

지금은 폐관돼 사라진 서울 종로3가의 서울씨네마는 늘 영화가 첫 공개되던 상영관으로 유명했다. 지방 배급업자들까지 대거 몰려 들어 영화의 첫 시사회를 보고 나왔다. 극장 앞이 이들로 시끌벅적거리면 해당 영화의 제작자는 개봉 첫날 다시 극장 앞으로 나와 그 옆 2층 카페인 ‘팡세’ 유리창에서 아래 관객들을 보며 이후 흥행을 점치곤 했다.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고 퇴근을 하느냐, 그 건너 허름한 중국집으로 자리를 옮겨 짜장면을 놓고 중국식 고량주를 한잔 하느냐는 그 순간의 분위기에 달려 있었다. 신화는 대중의 물결에서 나온다. 천만 관객 영화는 세상 이치의 흐름에 따라 만들어진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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