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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카와 아야의 시사일본어] 모시토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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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9호 31면

시사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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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에 실시되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일본에서는 ‘모시토라’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모시’는 ‘만약’이라는 뜻이며 ‘토라’는 트럼프의 일본 발음 ‘토람프’의 줄인 말이다. 만약 트럼프가 당선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예상할 때 많이 쓰인다.

2009년에 발매된 베스트셀러 소설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의 제목이 너무 길어 줄여서 ‘모시도라’라고 불린 것에서 따온 것이다. ‘모시도라’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저서 『매니지먼트』를 읽고 배운 지식을 활용해서 야구부 운영에 응용하는 건설적인 내용이었다. 하지만 ‘모시토라’가 쓰일 경우는 기대보다 불안감이 더 큰 듯하다. 특히 중국이나 북한에 관련한 안보 측면에서 더욱 그렇다. 이외에도 미국의 정책 변화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해온 전기차 보급 정책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크게 바뀔 가능성이 있다. 미국에 전기차 관련 공장 신설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 자동차 회사에는 큰 리스크가 된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4월 국빈 초청으로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정상회담을 가진 한편,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는 그 2주 후 뉴욕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회동했다. ‘모시토라’에 대비해 다양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행보로 보이지만, 일본 정부 내에선 ‘양다리 외교’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로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가운데 4월 말 일본 중의원 보궐선거에서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이 승리했다. 기시다 총리는 국회 조기해산을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하지만, 어쨌든 9월에는 자민당 총재 선거가 치러질 것이고 여기서 뽑힌 총재가 총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선 누가 다음 총리가 될지 보다 누가 미국의 차기 대통령이 될지에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 하긴 일본은 정권이 야당으로 넘어가지 않는 이상 누가 총리가 되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자국 선거에 훨씬 관심 많은 한국인들과 달리 일본인들은 미 대선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자민당 정권은 예측할 수 있지만, 트럼프가 당선되면 일본도 세계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 그것이 ‘모시토라’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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