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게이였나…청년에 사랑 고백, 노골적인 이 시 [신형철의 리믹싱 셰익스피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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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10음절짜리 행 14개(4-4-4-2 구조)가 규칙적 라임(각운)과 함께 움직이는 정형시다. 총 154편 중 빼어난 것을 고르고, 동시대적 사운드를 입혀 새로 번역하면서, 지금-여기의 맥락 속에서 읽는다.

대자연이 제 손으로 그린 듯한 여자의 얼굴 가진
당신은 내 열정을 지배하는 주인이자 여주인이지  
여자의 다정함을 가졌으나 여자의 어떤 건 몰라
변덕스러운 마음 말야, 그건 거짓된 여자들의 유행.  
그녀들의 눈보다 더 밝지만 덜 거짓되게 굴리는  
그 눈은 응시하는 대상마다 황금빛 옷을 입히네
색깔 있는 남자, 모든 색깔의 자질 다 두른 그는
남자들의 눈길 훔치고 여자들의 영혼 놀라게 하지.
처음엔 한 사람의 여자로 만들어진 당신이지만  
대자연 그녀가 당신을 빚는 중에 매혹되고 말아  
당신에게 무언가 덧붙임으로써 나를 좌절시켰지
당신에게 덧붙인 그것, 나에게는 소용없는 그것.
그러나 대자연이 여자들 기쁘라고 당신을 내었으니  
그대 사랑은 내 것, 그 사랑의 쓸모는 여자들 보물.
소네트 20 (신형철 옮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시(소네트 18)로 청년에게 사랑을 고백한 화자에겐 이제 거리낄 것이 없다. 그의 아름다운 웅변은 계속된다. 청년은 여자의 얼굴을 가졌다고 해야 할 정도로 아름답다. 여성적인 자질 중 아름다운 것만 가졌다.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줄 안다. 단조롭기는커녕 다채로운 색깔(hue)의 소유자다. 청년의 이런 면모는 남성과 여성 모두를 사로잡을 만한 것이다. 여성-자연이 그를 창조할 때 왜 남성의 성기를 달았겠는가. 그를 여성의 보물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 시점에서부터 이미 나는 졌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나는 나눠 가질 수밖에. 나는 청년의 사랑을 가져갈 테니, 그의 성기는 여자들이 누리라지.

이상할 게 뭐 있냐는 식으로 매끄럽게 요약해 봤지만, 사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시다. 이 지면에선 불가능한 ‘자세히 읽기(close reading)’를 시도하면 여러 모호한 구절들이 발목을 잡는다. 게다가 어떤 단어들은 셰익스피어 당시에 은어로 사용된 것들이어서 그 숨은 (성적인) 뜻까지 고려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그래서 이 작품은 소네트 전편을 통틀어 가장 논란이 많은 시가 됐다. 그 해석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시대의 한계가 반영돼 있고 해석자의 욕망이 투영돼 있음을 알게 된다. 당신은 어떻게 읽고 싶은가. 그리고 다음 질문엔 어떻게 답할 것인가. ‘셰익스피어는 게이인가?’

154편 중 청년 사랑시 100편 넘어

화자가 이 청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시는 소네트 154편 중에서 100편이 넘지만 성기가 언급되는 이 시는 특히 노골적으로 느껴졌던 모양이다. 엄숙한 시대의 독자들에겐 이 시가 골칫거리였고, 이 시의 암시를 거부하는 몇 가지 방식이 있었다. 역겹다는 고백과 함께 셰익스피어 전집에서 이 시를 빼버린 즉자적인 독자의 유일한 미덕은 솔직하다는 것이었다. 좀 더 세련된 독자는 이 시야말로 셰익스피어가 오히려 이성애자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읽었다. 남성 동성애자에게는 파트너의 (남성) 성기가 문제 될 이유가 없다는 것, 남성 성기의 ‘있음’이 한탄의 이유가 된다는 것은 이 화자가 이성애자라는 뜻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기관 중심적’ 독해에는 같은 레벨에서 반박하는 게 가능하다. 예컨대 비평가 그레고리 우즈(Gregory Woods)는 서양 미술사에서 남성 육체의 세 가지 이상형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나르키소스의 유순함, 아폴로의 성숙함, 헤라클레스의 힘. 이것은 성적 대상의 유형학이기도 하다. 특히 나르키소스에 대해 말하자면 “사춘기 소년이 지칠 줄 모르는 성기를 부여받았을지 모르지만, 그가 주로 찬미의 대상이 되는 건 뒷모습의 기분 좋은 약속 때문”이라는 것. (물론 이건 항문 성교 이야기다) 이 문장 바로 뒤에 저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덧붙였다. “셰익스피어는 제 남자 친구의 성기엔 관심이 없다(소네트 20).”

우리가 자주 참고해 온 돈 패터슨(Don Paterson)도 어떤 이성애자들의 고루한 상상력을 답답해한다. 이 시의 화자가 (더 나아가 셰익스피어가) 게이인가, 라는 질문은 대답하기 싫을 정도로 어리석은 것이라고, 답은 당연히 예스라고 그는 말한다(양성애자일 가능성까지 포함해서). 자신에게도 사랑하는 동성 ‘친구’들이 있지만 그중 한 사람을 위해 100편이 넘는 시를 쓴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화자는 청년을 사랑한다. 이 시의 후반부가 드러내고 있는 것은 자신에게 가해질 사회적 비난으로부터 서둘러 거리를 두려는 화자의 모습이고, 우리가 이 시에서 읽어야 할 것은 제 욕망을 부인할 수밖에 없는 자의 비극이라는 것.

일러스트=김지윤 기자

일러스트=김지윤 기자

게이 식별 질문이 이성애 규범성 강화

‘게이/레즈비언 연구’와 같지 않은(정상성의 범주에 더 포괄적으로 도전하는) ‘퀴어(queer) 이론’의 관점에선 다른 말들이 가능해진다. 멜리사 산체스(Melissa Sanchez)는 ‘셰익스피어는 게이인가?’라는 질문이 자칫 ‘이성애 규범성’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던져질 땐 신중히 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작품 안에서 게이/레즈비언 캐릭터를 식별하는 것만으로도 이성애 규범성에 대한 중요한 도전일 수 있지만, 셰익스피어의 전체 작품이 근대적 분류법에 부합하지 않는 다양한 비규범적 욕망과 행위들을 얼마나 다채롭게 묘사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에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아직 다 읽히지 않았다.

A woman’s face with nature’s own hand painted,
Hast thou, the master mistress of my passion;
A woman’s gentle heart, but not acquainted
With shifting change, as is false women’s fashion:
An eye more bright than theirs, less false in rolling,
Gilding the object whereupon it gazeth;
A man in hue all hues in his controlling,
Which steals men’s eyes and women’s souls amazeth.
And for a woman wert thou first created;
Till Nature, as she wrought thee, fell a-doting,
And by addition me of thee defeated,
By adding one thing to my purpose nothing.
But since she prick’d thee out for women’s pleasure,
Mine be thy love and thy love’s use their treasure.

신형철 문학평론가

신형철 문학평론가

신형철=2005년 계간 문학동네에 글을 쓰며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인생의 역사』 『몰락의 에티카』 등을 썼다. 2022년 가을부터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비교문학 협동과정)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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