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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각의 문화시론

30년 맞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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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진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김진각 성신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지난달 20일 막을 올린 ‘2024 베니스비엔날레’는 국제미술의 살아 있는 현장이다. 올해로 60회를 맞은 베니스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은 새로운 양식과 장르, 시의성 높은 담론들과 이슈가 버무려진다. 동시대를 사는 전 세계 작가들의 각축장이다.

베니스비엔날레는 장소를 이동함으로써 가치를 획득하는 일종의 문화적 유목주의(Nomadism)로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말하자면 국가와 지역의 차이를 미술 전시라는 문화예술적 교류로 확장한다. 베니스비엔날레를 단순한 ‘미술 올림픽’이나 ‘미술 박람회’로 여기지 않고 국가적 관심의 반영으로 보거나 국가적 정체성 내지 정치적 경쟁심과 연관해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백남준·김석철 제안으로 설치
성과 있지만 시설 낡고 비효율
한국미술 위상 높이는 곳 돼야

문화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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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광복 50주년이던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가 열리는 이탈리아 베니스 자르디니 카스텔로 공원에 세계 26번째 국가관인 한국관을 설치함으로써 국제미술의 격전지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당시 한국관 설치 배경엔 우리나라가 배출한 두 명의 걸출한 예술가인 백남준과 김석철이 있었다. 1993년 독일관 공동 작가로 참여해 주최측인 베니스비엔날레 재단이 수여하는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백남준은 예술의전당을 설계한 건축가 김석철과 함께 독립된 국가관의 건립 필요성을 정부에 제안했다. 이것이 한국관 설치의 계기가 됐다.

베니스비엔날레에 설치된 국가관은 국가별 커미셔너가 전시 기획 및 작가 초청을 맡는다는 전시 운영 규정이 있다. 이에 따라 한국관은 그동안 국가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커미셔너를 맡아 한국관 운영 전반과 예술감독 선정 등을 주관해 왔다. 여기에 드는 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금만 연 10억 원(2024년)이 훌쩍 넘는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설치 성과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아무래도 수상 실적이다. 1995년 한국관 설치 첫해 전수천 작가를 시작으로 1997년 강익중, 1999년 이불까지 3연속 특별상을 받았다. 2015년엔 임홍순 작가가 ‘위로공단’이라는 작품으로 한국 작가 최초로 본 전시 은사자상을 받았다. 이와 같은 업적은 작가들의 개인적 노력과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맞물린 결과로 볼 수 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는 우리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먼저 ‘한국관 설치 30주년’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 미술계에서 한국 미술의 위상 제고를 위한 방안 마련이라는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설치 30주년을 기념해 현지에서 크게 세 갈래의 행사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도로 진행 중이다. 국가관 전시, 국제전 본 전시, 한국관 30주년 특별전시가 이어진다. 행사 장소는 각각 다르지만, 우리나라 미술의 가치를 국제적으로 확산하는 데 이바지한다는 공통 목표가 설정돼 있다. 2015년부터 현대자동차 등 몇몇 국내 기업들이 한국관 전시를 꾸준히 후원하고 있는 것은 기업의 문화예술 후원 활동, 즉 메세나(Mecenat)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고무적이다.

다만 이쯤에서 냉철하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운영 전반을 들여다볼 여지도 있다. 첫째, 한국관 시설 노후화 문제다. 건물의 부식과 화재 위험, 항온 및 항습장치 미비에 따른 작품 훼손 위험 등이 상존한다. 이런 현실은 국제 미술계의 비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전시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방해가 될 정도로 비효율적인 공간 설계도 거슬린다.

둘째,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와 30주년 특별전시가 미술계만의 잔치가 되면 곤란하다. 적지 않은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행사인 만큼 내·외국 일반 관객 유치를 통해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한국관 바로 옆 독일관과 영국관 등에 연일 관객들이 긴 줄을 형성하고 있는 장면을 주목해야 한다.

셋째, 기업의 재정적 후원이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일부 기업의 후원만으로는 치열한 국제 미술 경쟁에서 한국 미술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많다. 해외 유명 미술관 등을 오랫동안 후원하는 국내 대기업의 관심을 베니스비엔날레로 돌리도록 정부의 예술 후원 정책 방향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실험 정신을 바탕으로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곳이다. 그렇다면 한국 미술은 한국관 전시를 통해 여기에 부합하고 있는지, 국제화 미술 담론에 뒤처지는 건 아닌지 꼼꼼하게 살피는 것도 숙제다. 베니스비엔날레가 단순히 세계 최대의 미술 축제를 넘어 각 국가의 문화예술 수준을 간파하는 척도임을 떠올리면 더욱 자명하다.

김진각 성신여대·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