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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철완의 마켓 나우

캐즘 탓은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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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

배터리와 전기차 제작사들의 1분기 실적 발표가 마무리됐다. 어두운 예상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특히 배터리 제조업체와 그 후방 산업의 실적이 매우 좋지 않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적자로 전환했다.

전기차 시장이 ‘캐즘(chasm)’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배터리사 임원과 전문가가 늘고 있다. 혁신적인 기술 제품은 초기 수용자층을 확보한 후 대중화 단계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캐즘’이라고 부르는 수요 급락이 발생한다. 지리학에서 캐즘은 지각변동으로 생긴 균열·단절을 의미한다.

배터리·전기차 산업에서 캐즘이라는 프레이밍은 조지 레이코프의 베스트셀러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2012)에 나오는 코끼리와 같다. 모든 것을 캐즘 탓으로 돌리며 우리 산업이 빠진 현실을 망각하는 게 진짜 위기의 시작일 수 있다. 캐즘에 기반을 둔 의례적 결론은 종종 ‘하반기엔 풀린다’라는 식의 막연한 낙관론이다. 안타깝게도 캐즘 논리의 인기는 현실 인식 부재와 무기력을 방증할 뿐이다.

마켓 나우

마켓 나우

현실은 급박하다. 전기차 제작사들의 설비투자 계획이 대거 조정됐다. 제조 능력 과잉(overcapacity)으로 배터리 제조사들의 재구조화도 절실해졌다. 전 세계적인 전기차 보조금 감축 추세와 중국 전기차 산업의 세계화 같은 환경 변화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역점 사업인 ‘제조혁신 2025’가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안으로는 노후 차 교체 프로그램 같은 새로운 정책을, 밖으로는 유럽·북미 시장에 더해 동남아·남미 같은 새 시장의 개척 같은 세계화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동남아·남미 등에서 BYD 배터리 전기차 판촉 행사가 소셜미디어에서 심심찮게 보인다. 요즘 중국 정책 흐름을 보면 보조금 정책의 완급 조정으로 옵티멈나노에너지 같이 기술력 부족하고 경영 상황 나빠진 배터리 제조사를 시장에서 퇴출했던 2019년이 연상된다.

중국 배터리·전기차 제작사들의 경쟁력이 최고조에 달했다. ‘대륙의 실수’라는 밈으로 잘 알려진 샤오미가 최근 출시한 전기차 ‘SU7’은 제품 수준이 ‘평타’를 넘어서 인기몰이 중이다. 싼 가격에 잘 만들면 소비자들은 열광한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일찍이 가장 두려운 경쟁자는 BYD라며 차별화된 경쟁력의 해답을 ‘종단 간 신경망 기반의 자율 주행’에서 찾았다. 이에 기반을 둔 ‘로보택시’ 구현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회사 자체를 재구조화 중이다.

우리 전기차 회사들의 혁신이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는다. 가격 대비 성능도 아직 고만고만하다. 단기간에 반전은 기대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캐즘 탓은 그만하고, 장기화할지 모를 이 위기를 적극적으로 돌파할 때다.

박철완 서정대 스마트자동차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