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 탈옥의 책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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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법무부는 언제까지 교도소를 불법이 판을 치는 곳으로 방치할 것인가. 우리 정부에 행형행정이라는게 있는가 묻고 싶다. 교도관이 죄수들의 돈을 먹고 그들에게 금지된 물품을 넣어주는가 하면 뇌물로 받은 수표로 대금을 하는가 했더니 드디어는 살인무기수등 흉악범 일당 3명이 쇠창살을 톱으로 자르고 2중 3중으로 쳐져 있다는 감시망을 비웃으며 탈옥하는 기상천외의 사태가 벌어졌다.
감시·감독이 그 어떤 곳보다 완벽하고 철저해야 할 교도소에서 어떻게 쇠창살을 자르고 사닥다리까지 만들 수 있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덩그렇게 서있는 감시초소는 또 무얼하고 있었는가. 탈옥을 다룬 무슨 영화에서나 있을법한 이야기가 우리의 전주교도소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더구나 일당중에는 오는 3월이면 만기출소하는 초범의 소년범까지 흉악범과 함께 끼어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교화과정을 통해 죄지은 사람을 사회에 복귀시키기는 커녕 「교도소가 범죄의 재생산처」가 되고 있다는 사실까지 입증하고 있는 셈이다. 법무부측의 말대로 수용사정 때문이었다 하더라도,그렇다면 특별히 철저한 감시·감독이 있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보다 더 큰 우리의 의구심은 탈옥수들이 탈옥을 준비하고 시행하면서 번연히 눈뜨고 있는 교도관들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 신출귀몰의 재주가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교도소 직원이 매수돼 탈옥을 방조하거나 적어도 묵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
감방안에서는 소지가 철저히 금지돼 있는 쇠톱의 반입경위가 그렇고,적어도 한달 이상이 걸렸을 것이라는 쇠창살 절단작업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렇다.
4.5m 높이에 철조망까지 쳐진 담장을 넘는데도 그 방향 2개 초소에서 모두 새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도 의심스럽고 더구나 감방안의 사물함으로 사다리를 만들고 있었으나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데는 어이가 없을 뿐이다.
우리의 이같은 의구심은 최근 들어 교도소내에서 빈발하고 있는 비리노출 때문에 더하다. 조직폭력배들이 그 안에서 「공권력과의 전쟁」을 모의하고 어떤 폭력두목은 교도소밖에서까지 교도관으로부터 법무부의 행형업무를 「보고」받는다는 말까지 들린다.
「범죄와의 전쟁」을 요란하게 떠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붙들어 놓은 범죄자를 이 모양으로 다루고 있다면 대통령까지 나선 범죄와의 전쟁은 심하게 말해 한낱 허세에 불과한 것이다.
행형공무원의 기강이 이 정도라면 범죄소탕은 백년하청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차라리 「범죄와의 전쟁」은 접어두고 「공직자 기강과의 전쟁」을 선언하는 것이 어떨까 싶을 지경이다. 우리는 이미 10·13 범죄척결조치가 나올 때부터 공직자의 도덕성 확립과 신뢰획득이 전제되지 않는한 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번 사건의 직접 관련자는 물론,잇따른 교도소 비리와 관련해 행형당국과의 문책을 포함해서 행형행정의 일대쇄신을 촉구한다. 교도소를 더이상 무법천지의 복마전으로 방치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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