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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수렁에 빠진 미국…해법 제각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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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 2일 미군 헬기 피격으로 종전 이후 최대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이라크의 수렁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출구전략(exit strategy)에 대한 백가쟁명(百家爭鳴)식 의견이 표출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그러나 3일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연설하면서 "이라크에서 도망치지 않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치안자치론=현지 보안 인력을 확충하고 정보능력도 향상시켜 치안을 이라크 스스로 맡을 수 있게 만들어줘야 미국이 '빠지기'에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3일 미 국방부 자문역인 게리 앤더슨 예비역 해병 대령을 인용해 "군 출신 등 이라크인을 훈련시켜 치안을 맡긴 다음 후세인 잔당 등과 싸우게 해야 한다"는 치안자치론을 펴고 있다고 전했다.

◆추가 파병론=상원 외교위원회의 조셉 바이든 의원과 리처드 루가 의원은 나토 병력 등을 추가 파병할 것을 강하게 주장한다. 압도적 무력으로 이라크의 저항세력을 평정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경우 이라크 저항세력에게 더 많은 목표물만 제공하고 말 수도 있다. 그리고 여유 병력도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도 '일이 잘못 돼가고 있다'는 이미지를 줄 것을 걱정해 병력 증강을 꺼릴 가능성이 크다.

◆우방 협조론=딕 게파트 하원의원은 "이라크 사태는 미국 혼자 힘으론 해결하기 힘들다"며 "아랍국 등 우방에 고개를 숙여 협조를 구하자"고 주장한다. 말은 그럴싸해도 실천은 가장 힘든 방안이다. 군사력을 배경으로 일방주의 해결 방식에 물든 미국으로선 "도와달라"고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리핀 교훈론=BBC방송의 폴 레널즈 기자는 "해방자로서 환영받았다가 점령자로 저항에 직면했고, 친구로 떠났던 필리핀에서의 교훈을 상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겨 필리핀을 할양받은 미국이 1898년 이 나라에 처음 도착했을 때 오랫동안 스페인에 대항해 독립투쟁을 해왔던 현지인들은 크게 환영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아닌 점령이 미국의 목적임이 드러나면서 서로 충돌한다. 여러 해 동안 수많은 희생 끝에 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고 마침내 서로 평화를 얻게 됐다. 이라크에서 중요한 것은 '몇 해가 아닌 수개월 안에 상대가 원하는 것을 알고 들어주기'라는 것이다.

◆미군 철수론=미국 고위 정치인 중 철수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이는 데니스 쿠키니치 하원의원뿐이다. 하지만 대놓고 철수를 주장하진 않아도 사실상 그렇게 몰고 가는 이들도 있다. 미 민주당 대선 후보 가운데 하나인 전 나토 사령관 웨슬리 클라크는 "성공전략도 없이 전쟁에 잘못 끌려 들어갔다"고 비난하며 철수에 기운 주장을 펴고 있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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