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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테러 ISIS-K, 시아파 돕는 러시아에 오랜 원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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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3호 10면

지난 22일 러시아 국가방위군 요원이 대규모 테러가 발생한 모스크바 크로커스 콘서트홀 인근에서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2일 러시아 국가방위군 요원이 대규모 테러가 발생한 모스크바 크로커스 콘서트홀 인근에서 경계 근무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최소 143명이 숨지고 360명 이상이 부상한 지난 3월 22일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를 계기로 극단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과 러시아의 오랜 악연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ISIS-K가 왜 러시아를 공격 대상으로 삼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다. 우선 러시아는 ISIS-K의 여러 적중 하나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활동해온 ISIS-K는 이슬람을 개혁해 경전인 『쿠란』 대로 살아야 한다는 이슬람 수니파의 와하비즘과 7세기 초 이슬람 관습·샤리아(이슬람 규범과 이슬람법)를 따라야 한다는 살라피즘이 결합한 원리주의를 신봉한다. 이들은 자신들과 종교·종파·생각이 다른 모든 세력을 상대로 지하드(성전)를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ISIS-K는 우선적으로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적으로 간주하며 증오와 분노를 분출해왔다. 아울러 러시아는 물론 미국·영국·캐나다를 비롯한 서방의 모든 기독교도를 말살해야 할 이슬람의 적으로 보고 이들을 상대로 성전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ISIS-K가 스스로 공개한 모스크바 공격 과정을 담은 비디오에는 ‘기독교도를 살해하라’는 말이 나온다. ISIS-K가 러시아를 처단해야 할 기독교 세력의 하나로 여겨 이번 테러 공격에 나섰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그래픽=김이랑 기자 kim.yirang@joins.com

ISIS-K는 이슬람 내에서도 종파가 다른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서북부 거주 이슬람 시아파를 비난하고 공격해왔다. 심지어 같은 수니파인 탈레반 세력과도 더욱 엄격한 교리와 투쟁성을 내세우며 ‘선명성 경쟁’을 벌여왔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전 세계 대부분의 무슬림 국가 지도자들을 이슬람을 배신한 ‘배교 세력’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여기에는 파키스탄·튀르키예·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등이 포함된다. ISIS-K가  이슬람권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독불장군’으로 불리는 이유다.

ISIS-K는 이들 국가 중 특히 러시아에 오랫동안 원한을 품어왔다. 근원은 ISIS-K가 생기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프가니스탄이 1979~89년 10년 동안 소련에 점령된 것을 그 시작으로 볼 수 있다.

1994~96년 캅카스의 무슬림 지역인 체첸에서 러시아로부터 분리를 원하는 독립파 무장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러시아 사이에 벌어진 1차 체첸 전쟁도 무슬림 극단주의 세력이 러시아에 원한을 품게 된 계기 중 하나다. 막대한 피해에도 1차 전쟁에선 독립파가 승리를 거뒀지만, 1999~2009년의 2차 전쟁에선 러시아군이 친러 체첸인의 지원과 대부분 무슬림인 주민에 대한 잔혹한 초토화 작전으로 체첸 수도 그로즈니를 점령했다.

2011년 발발해 지금도 계속 중인 시리아 내전은 수니파 극단주의 세력의 불만을 불렀다. 러시아가 친러·시아파인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 정권을 지원하면서 반군·민간인, 그리고 테러세력 이슬람국가(IS)의 핵심과 알카에다 연계 세력에 대해 대대적인 폭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에선 ISIS-K와 대립한 탈레반 세력을 지지했다. ISIS-K가 2022년 9월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러시아 대사관을 테러 공격해 2명의 외교관을 살해한 것은 러시아의 친 탈레반 정책에 앙심을 품은 결과로 보인다. 앞서 2021년 8월 ISIS-K가 카불 공항에서 철수하는 미군을 타깃으로 폭탄 공격을 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ISIS-K가 탈레반과 선명성·과격성 경쟁을 벌인 결과다. 타지크인과 우즈베키스탄인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출신 무슬림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러시아 사회와 당국의 처우도 이들의 불만에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과 대외정보국(SVR)은 이슬람 세력의 준동을 우려해 무슬림 이주노동자를 감시하면서 수시로 연행하고 심문해왔다.

이번 모스크바 테러범들의 고향인 타지키스탄이 중앙아시아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 워싱턴대 연구에 따르면 타지크인은 전 세계 각지에 1900만~26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본국인 타지키스탄(인구 1000만 중 870만 명)보다 아프가니스탄(800만~1500만 명), 우즈베키스탄(800~1200만 명) 등 외부에 더 많이 정착했다. 러시아에도 40만 명 정도가 이주노동자로 살아간다.

타지크인은 이란에서 주로 사용하는 파르시(페르시아어)의 방언을 사용한다. 아프가니스탄과 중앙아시아는 역사적으로 페르시아의 세력권으로,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타 민족끼리 상호 소통을 위한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ka·소통 공용어)로 파르시를 사용한다. 이란에선 민족과 상관없이 국민 대다수가 시아파 무슬림인 데 비해 타지크인은 대부분 수니파다.

ISIS-K는 2015년 파키스탄 탈레반의 지역 지휘관이던 하피즈 사이드 칸이 IS에 충성을 맹세하면서 설립됐다. 호라산은 이란 동북부의 동호라산주·남호라산주·호라산에라자비주 등 3개 주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일부까지 포함한 역사·지리적 공간을 가리킨다. IS의 ‘테러 선교사’가 호라산에 파견된 게 아니라 현지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이 IS의 프랜차이즈를 자처하면서 탄생한 셈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들이 과격한 주장을 하면서 잔혹한 이슬람 테러를 주도해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설립 초기에는 과격한 주장에도 그리 위협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미국 정보당국과 싱크탱크 등에 따르면 이 조직은 2017년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과 200회 이상 교전하면서 호전성과 공격력을 키웠다. 2019년 결혼식장 자폭테러, 2020년 카불대 총격사건을 벌여 민간인을 살해했으며, 2021년 이후에는 미군과 철수 교섭을 했다는 이유로 카불 공항에서 테러를 벌였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의 망명자 수용과 관련한 글로벌 보안 정보를 제공해온 유럽연합 망명기구(EUAA)는 “ISIS-K는 2022년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등에서 연속적인 테러를 자행하면서 공격 능력을 극대화했다”고 평가했다. 목소리만 높던 극단주의 주장이 실질적인 글로벌 위협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에 따라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미국과 서유럽을 비롯한 서방은 물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도 맞서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극단주의자들의 위협은 러시아에 국한되지 않고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로 확산할 태세다. 아프가니스탄·중앙아시아와 접경한 중국도 안심할 수 없다.

채인택 전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tzschaei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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