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설렁탕에 달달한 깍두기 국물…24시간 열린 ‘주당들 성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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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3호 24면

이민영의 ‘SNS시대 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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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노포 중에는 설렁탕집이 유난히 많다. 주인 입장에서는 손님이 앉자마자 이미 끓여둔 국물을 솥에서 바로 떠주면 되고, 손님 입장에서는 순식간에 밥을 말아 먹고 나갈 수 있으니 가격 면에서나 시간 면에서나 너무나 효율적인 음식이다. 상업이 발달한 서울의 중심, 종로와 을지로 일대에서 설렁탕이 수십 년간 꾸준히 인기를 끌어온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그렇다면 신사역 부근에서 1976년부터 48년째 성업 중인 ‘영동설렁탕(사진1)’은 어떻게 발전해왔을까. 이 지역에는 70년대부터 생긴 아귀찜 골목과 간장게장 골목, 그리고 설렁탕이나 평양냉면을 파는 노포들이 많다. 모두 강남이 새롭게 개발된 시기를 배경으로 발전했다. 어느 사회, 어느 시대든 인구가 급속도로 늘면 건설 붐이 일었고, 남성 독신 노동자들이 몰려들면서 패스트푸드가 발달했다. 70~80년대 당시 나날이 커져가던 영등포구의 동쪽이라는 뜻을 가진 ‘영동’, 오늘날의 신사동 사거리는 강남에서 가장 먼저 개발되면서 유흥업소와 음식상권이 밀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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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영동설렁탕은 강북의 설렁탕 노포와는 다른 문화를 갖고 있어 특히 흥미롭다. 지금도 영동설렁탕을 다니는 중년 단골 중에는 강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거나, 20대 때 신사동의 클럽들을 꽤 다녔다는 술꾼들이 많다. 이들에게 영동설렁탕은 ‘리버사이드’를 비롯한 나이트클럽 혹은 압구정 락카페에서 놀다가 포장마차에서 2차, 노래방에서 3차를 마친 뒤, 새벽 즈음 4차로 오는 곳이었다. 물론 직장인, 근처 주민들도 있으니 하루 종일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도 영동설렁탕은 24시간 내내 운영한다.

영동설렁탕 테이블 위에는 놓인 것이 많다. 스테인리스 뚜겅이 닫히지 않을 만큼 깍두기와 배추김치가 넘치도록 담겨있고 주전자에는 달달한 ‘깍국’, 즉 깍두기 국물이 담겨있다. 20~30년간 이곳을 다닌 단골들에 따르면 다른 설렁탕 가게처럼 처음에는 이곳에서도 ‘깍국’을 주문해야만 주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테이블 위에 항상 놓아둔다고 한다.

SNS 후기에는 다른 설렁탕집에 비해 국물이 맑고, 수육에는 머릿고기·우설·사태 등의 부위가 나온다는 기본 사실은 물론, 단골들의 정겨운 이야기도 많다. “해장하러 갔다가 술을 더 마시게 되는 곳” “주당들의 성지”라는 표현도 있다. “기름 빼고 혹은 많이, 미원 빼고” 등 단골들만의 주문법도 눈에 띈다.

메뉴판이랄 것은 없고, 벽에 딱 2가지 메뉴만 빨간 글씨로 씌어있다. 설렁탕(사진2) 1만4000원, 수육 4만9000원.

이민영 여행·미식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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