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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컷 cut

때로는 흑백이 본질을 드러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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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가끔 영화관에 가기 전 관람평을 읽는다. 한 줄짜리여서 줄거리에 노출될 염려도 적고, 어느 정도 느낌도 짐작할 수 있다. 영화 ‘오키쿠와 세계’ 관람평에서 눈길을 끈 한 줄이 있었다. ‘아. 흑백이라 다행 ㅎㅎ’ 대체 무엇이 다행일까. 그 뜻을 실감한 것은 영화가 시작되면서였다.

영화의 배경은 메이지 유신 직전의 일본이다. 1850년대 후반 에도(현 도쿄)에 살던 도시 하층민들의 삶이 펼쳐진다. 주인공은 몰락한 무사 집안의 딸 오키쿠와 똥거름 장수를 하는 두 청년, 야스케와 츄지다. 영화의 첫 장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에도의 응코(똥)는 어디로?’다. (※약간의 스포 있음)

컷 c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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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나라한 장면 장면을 견딜 수 있게 해준 건 흑백 영상이었다. 색깔을 빼니 신기하게도 냄새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흑백은 사람과 사람의 마음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줬다. 특히, 끔찍한 사건으로 목소리를 잃은 오키쿠가 츄지를 찾아가 연정을 고백하는 장면에서다. 오키쿠의 손짓과 몸짓에 츄지도 발성이란 표현수단을 내려놓고 눈빛과 손짓, 몸짓으로 마음을 털어놓는다.

어떻게든 마음을 보여주려 필사적인 그들의 손짓과 몸짓을 더 도드라지게 한 건 흑백의 영상이었다. 화려한 색색의 겉 포장을 벗기고 나니 가려져 있던 골간(骨幹·핵심 부분)이 드러난다. 저녁 무렵 후미진 골목 안에서 서로 무릎 꿇고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 어깨 위로 하얀 눈이 쌓인다.

우린 흑백을 부정적으로 여길 때가 많다. 컬러가 다양성을 의미한다면 흑백은 이분법적이고 단선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흑백논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흑백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시선은 색감을 따라가다 본질을 놓치고, 착각과 오류에 빠지곤 한다. 때로는 흑백의 프리즘으로 진실을 보아야 하는 순간도 있다. 그것이 영화관 안이든, 밖이든.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