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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한슬의 숫자읽기

착한 전기요금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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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박한슬 약사·작가

박한슬 약사·작가

전기요금 인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결국 올해 2분기 전기요금이 동결됐다.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물가’다. 물가상승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공공요금 인상을 최대한 억누르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 말은 사실 핑계다. 이미 작년 5월 국내 물가 관리기관 중 하나인 한국은행의 이창용 총재가 밝혔듯, 전기요금 인상은 물가안정 정책과 상충하지 않는다. 한국전력이 적자를 메우려 발행하는 막대한 규모의 한전채가 되레 물가 인상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전기요금 동결의 까닭은 보름 남짓 남은 총선뿐이다. 매표(買票) 행위를 하는 거다.

차준홍 기자

차준홍 기자

물론 전기요금은 ‘물가안정법’의 적용을 받는 공공요금이다. 한국전력 같은 공기업에만 독점을 허용하는 것도, 실질적으로 요금결정권을 정부가 갖는 것도 공공재적 성격이 짙은 전기에 대한 국민들의 접근성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그뿐인가? 전기는 각종 산업의 필수적인 생산요소로 기능하고 있고, OECD 평균보다 낮은 전기요금을 유지하는 덕분에 우리 기업들은 해외에서 산업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됐다. 그러니 공공서비스 요금을 원자잿값 변동에 따라 과도하게 인상하는 건 그것대로 부작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전이 지금처럼 과도한 적자를 보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장기적으로는 전력공급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전력공급이 불안정해진다고 하면 발전(發電)만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으나, 실은 그만큼 중요한 게 바로 송전(送電)이다. 우리나라는 전력의 생산과 소비가 지역적으로 매우 이격이 커, 발전 시설이 아무리 늘어도 송전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전력공급이 불가능해서다. 예컨대 2022년 기준 지역별 전력자급률 자료를 보면, 서울이 쓰는 전력량 중 오직 8.9%만이 서울 내에서 생산된 전기다. 나머지 91.1%는 원전을 여럿 갖춘 부산·경남이나 대규모 화력발전소를 가진 충남 같은 곳에서 생산된 전력을 끌어다 충당하는 구조다. 그러니 제대로 된 송전망을 갖추지 못하면 수도권에 집중된 첨단 산업시설의 적절한 가동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장래엔 송전망이 부족해질 수 있다는 식의 전망이 아니다. 이미 동해안 지역은 발전 용량이 송전 가능한 최대 용량을 초과해, 발전량을 제약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추가적인 송전망 구축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그런 송전시설 투자를 계획하고 집행하는 곳이 한국전력이다. 이미 200조원의 부채를 짊어져, 하루에 이자만 121억원씩 내야 하는 곳에 그럴 여력이 있을까. 표심이 무서워 전기요금 인상을 주저하다, 데이터센터나 전기차 같은 추가 전력수요를 외면하는 건 장기적 산업경쟁력을 깎아먹는 일이다. 그런데 대체 언제까지 이런 매표 행위를 ‘착한 적자’라 부를 생각일까.

박한슬 약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