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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성민이 소리내다

한부모 가정 70% 양육비 못 받아…강제 징수 건보공단에 맡겨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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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가 적지 않아 이를 강제 집행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부모가 적지 않아 이를 강제 집행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배드파더스라는 단체가 있다. 2015년 만들어진 곳으로 양육비를 주지 않은 부모의 신상을 홈페이지에 공개해 논란을 일으켰다. 여기엔 유명 인사들도 있었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법적 근거 없이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사적 제재에 해당한다는 비판도 제기됐고, 결국 단체 대표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법정 공방 속에 지난 1월 대법원은 배드파더스 대표의 상고를 기각하고 벌금 100만원에 선고 유예를 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선고가 유예됐지만 이 행위를 유죄로 본 것은 양육비 미지급자에 대한 사적 제재가 지나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사적 제재가 불필요할 만큼 국가가 양육비 이행 책임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돈 안줄 때 받을 수단 별로 없어
미지급 부모 신상 공개 논란도
정부의 선지급 제도 도입 필요

자녀 안 키우면 양육비 지급 의무

여성가족부가 2021년 내놓은 한부모가족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부모가족이 자녀 양육 시 가장 어려움이 크다고 답변한 항목이 ‘양육비, 교육비 부담’이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지 않는 상대방인 비양육부모로부터 양육비를 받은 적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72.1%로 2018년 조사 때의 73.1%와 큰 차이가 없다. 비양육부모란 이혼한 전 배우자나 아이의 생부모 등 미성년 자녀를 직접 양육하지 않는 아빠 또는 엄마를 말한다. 이들에겐 양육비를 지급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양육비를 주지 않을 경우 이를 받아내기가 만만치 않다. 비양육부모에게 돈을 보내 달라고 수차례 연락하고 재산을 찾아내고 법원에 강제집행 신청을 하는 과정은 불편하고 시간과 돈이 든다. 또 그렇게 전 배우자나 아이의 생부(또는 생모)와 마주하는 것이 큰 고통이 되기도 한다.

우리 법은 양육비를 받을 권리를 단순히 양육부모의 개인적 권리로 보지 않는다. 양육비는 아동이 비양육부모로부터 양육받을 법익을 최소한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비양육부모가 인간으로서 도리를 완전히 저버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결단이기도 하다. 아동이 자신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양육부모에게 양육비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그리고 지난 15년 넘게 양육비 이행 확보를 위한 여러 가지 제도를 도입하였다. 하지만 아직도 양육비 받기가 어렵고 많은 양육부모들이 양육비 받기를 포기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국회엔 양육비 지급 이행 확보를 위한 법안 20여 개가 발의돼 있고, 이 중 8개는 양육비 선지급 제도 도입을 담고 있다. 양육비 미지급 시 정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하고 양육비 채무자로부터 회수하는 제도다. 여야는 모두 지난 대선에서 이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이번 총선에서도 또 동일한 공약을 발표했다. 정부는 최근에 있었던 민생토론회 등에서 양육비 선지급 제도를 조속히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양육비 긴급지원제도, 회수율 낮아

그런데 이 제도가 도입되지 못한 이유가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015년부터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급박한 상황에 몰렸지만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한부모 가정을 위해 아동 1인당 20만원에 최장 12개월까지 정부가 먼저 지원을 하고 나중에 양육비 채무자에 받아내는 제도다. 그런데 회수율이 15%에 불과하다. 받지 못한 돈은 국가의 몫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양육비 선지급 제도가 전면 도입되면 재정 부담이 늘 수밖에 없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양육비 선지급 제도 도입 시 추가 재정 부담이 매년 766억원 정도에 이를 것이라고 추계했다.

양육비 선지급 제도를 도입하려면 실효성 있는 양육비 징수 방안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양육부모가 제때 양육비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양육비 징수가 늦어지면 국가가 선지급하고 구상할 수 있어야 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11일 미국과 호주 사례를 참조하여, ‘양육비이행관리원’의 권한 확대를 통한 양육비 강제 징수 방안을 제안했다. 양육비 채무자에 대한 금융정보 조회 권한을 관리원에 부여하고, 법원 절차 없이 채무자 직장에 압류를 통보하고 징수하여 양육부모에게 전달하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한국엔 이미 양육비를 징수할 수 있는 인프라가 존재한다. 양육부모나 국가가 양육비 징수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위탁하고 건강보험료와 함께 양육비를 징수할 수 있다고 본다. 건보공단은 이미 임금채권보장법에 따른 징수 업무 등을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다. 건보공단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매달 건강보험료를 고지한다. 의료보험 혜택처럼 양육비도 매달 지급되어야 한다.

직장가입자는 매달 월급에서 원천 공제하는 방식으로 건강보험료를 납부한다. 마찬가지로 직장가입자인 양육비 채무자의 월급에서 양육비를 원천 공제할 수 있다. 건강보험료 체납처분 대상자가 되면 소유한 동산, 부동산에 대한 압류, 매각(공매) 절차가 진행된다. 양육비 체납 시에도 그렇게 집행할 수 있다.

건보공단이 양육비를 징수 업무를 위탁 수행한다면 올해 2월 법 개정으로 독립기관이 되는 양육비이행관리원은 양육지원이나 양육비 집행권 확보를 위한 법률지원, 양육비 채무자 주소, 근무지 등 조사 지원 등에 집중할 수 있다.

아동이 비양육부모로부터 양육 받을 법익을 최소한이나마 실현하고 비양육부모가 인간으로서 도리를 완전히 저버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면, 양육부모가 양육비를 받기 위해 드는 시간과 돈, 비용이 충분히 적어져야 한다. 여야 모두 이번 총선에서 내세운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지 않으려면 이제는 실효성 있는 양육비 징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성민 변호사·법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