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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지휘자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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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봄나무들이 곧 틔울 꽃망울을 만지작거리는 듯했던 지난 21일 목포문화예술회관을 찾았다. 목포시향이 연주하는 브루크너 교향곡 6번을 듣기 위해서였다.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정헌은 작년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창단 40주년 기념공연에서 말러 교향곡 5번을 연주한 데 이어 벅찬 도전에 나섰다. 다른 지역의 클래식 음악 관객에게는 낯선 풍경도 있었다. 교향곡 6번 1, 2악장이 끝나고 15분간 휴식시간으로 뒀고 이후 3, 4악장이 연주됐다. 곡이 길어 지루하게 느낄 관객을 위한 배려였다. 웅장한 1악장이 펼쳐지는 도중에 칭얼대는 아이를 데리고 퇴장하는 관객도 있었다. 2악장에서 총주의 음량이 작을 때 관악기가 엉기거나 세부가 취약한 부분이 들렸다. 음량이 높아지며 살아나더니 너그러움과 숭고함, 자애로움이 기억에 남을 만했다. 3악장에서도 압도적인 순간을 만들어냈고, 4악장에서 끝내 장엄하게 육박하던 브루크너 사운드는 도전 중 얻은 생채기들을 위무해주는 듯했다.

지난 21일 목포문화예술회관에서 목포시향과 예술감독으로서 마지막 연주를 이끈 정헌 지휘자. [사진 토마토클래식]

지난 21일 목포문화예술회관에서 목포시향과 예술감독으로서 마지막 연주를 이끈 정헌 지휘자. [사진 토마토클래식]

마이크를 든 지휘자 정헌이 “오늘 브루크너 어려우셨죠?” 물었다. 그리고 “오늘 연주가 목포시향에서 제 마지막 연주가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해 많은 관객들이 깜짝 놀랐다. 그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눈물을 훔치며 “늘 행복하시고 목포시향을 많이 사랑해주세요” 당부했다. 앙코르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 ‘장미의 기사’ 중 트리오였다. 오페라의 마지막을 아름답고 지고지순하게 기억하게 만드는 선율이 상징적으로 아련하게 울려 퍼졌다.

정헌은 “2021년 목포시향을 만났을 때 소리의 질감이나 표현이 거칠고 사나웠다”고 했다. 이런 질감을 이완시키기 위해 정헌은 베토벤과 슈만을 집중적으로 연주하며 편안하게 공명하는 소리로 다듬었다. 브루크너도 각 악기군의 화합을 꾀하며 악단의 발전을 겨냥한 선곡이었다.

정헌 지휘자의 마지막 연주란 게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통상 2~3개월 전, 적어도 한 달 전에는 거취를 정할 수 있도록 예술감독의 연임 여부를 알려준다.

하지만 임기가 20일 남은 시점에서도 목포시에서는 가타부타 통보가 없었다. 목포시향의 수·차석 대표인 팀파니 수석 마종수씨는 공연 당일 오후에도 시 문화예술과에 찾아가 문의했지만 ‘공연에만 집중해 달라’는 답 외에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헌 예술감독의 지난 3년에 대해 “역사를 쓰신 분이다. 연주하는 곡마다 파노라마처럼 색채를 입혀서 스토리텔링을 보여줬다”며 “물론 개인적으로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음악적인 부분은 단원 모두가 인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연주가 몇 번 더 하면 좋아질 것 같은 부분이 많았기에 아쉬움이 남았다. 라흐마니노프의 말이 생각났다. “음악은 평생을 채우기에 충분하지만 평생은 음악을 채우기엔 부족하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