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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기업·반기업 넘어 규제개혁으로 중소기업 키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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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양질의 일자리 만들 비책은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부원장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부원장

청년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 많은 청년이 졸업 후에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는 NEET(인구 중 일하지도 않고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도 않는 사람들)의 비중을 집계해 발표하는데, 같은 기준을 한국의 15~29세에 적용해 보면 NEET 비중이 20.9%에 달한다. 이는 OECD 평균인 14.9%를 훌쩍 넘는 수치다. 청년 고용률(인구 중 일하는 사람의 비중) 역시 한국은 낮은 편이다. 2022년 25~29세의 고용률은 OECD 평균(76.3%)과 한국(71.4%)이 약 5%포인트의 격차를 보인다.

한국 15~29세 NEET 비중 21%
청년 눈높이 맞는 일자리 부족

입시 경쟁, 저출산, 경단녀까지
좋은 일자리 충분하지 않은 탓

중소기업이 대기업 될 수 있도록
과도한 보호책 축소 검토해야

청년들이 이처럼 어려움을 겪는 것은 결국 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의 2023년 설문조사 결과(복수 응답)에 따르면 대학생이 취업하기 원하는 기업 중 중소기업은 16%에 불과했다. 반면 대기업은 64%, 공공부문은 44%를 차지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많은 경우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임금도 낮고 다른 근로조건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2022년 월 평균 임금은 300인 이상 사업체의 경우 약 590만원이었으나, 규모가 작을수록 임금이 줄어들어 5~9인 사업체의 경우 약 320만원에 불과했다. 거의 절반 수준이다.

임금·근로 조건 열악한 중기 취업 꺼려

임금 외의 근로 조건에서도 차이가 큰데, 출산 전후 휴가나 육아 휴직이 그러한 예다. 이들 제도는 각각 ‘근로기준법’ 및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보장하고 있는 근로자의 권리다. 그러나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실제로는 그 사용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사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사용이 어려운데, 5~9인 사업체의 경우 ‘필요할 때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6%(출산 전후 휴가) 및 48%(육아 휴직)에 불과하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의 일자리 비중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특히 영세한 규모의 사업체가 매우 많다. 10인 미만 사업체의 일자리 비중은 자영업자 포함 약 45%, 임금근로자 기준으로 약 30%에 달한다. 이처럼 매우 많은 일자리에서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고 근로 조건도 좋지 않기 때문에 많은 청년이 일자리를 쉽게 찾지 못하고 NEET 상태에 머무는 것으로 관측된다.

좋은 일자리의 부족은 다른 여러 가지 문제도 낳고 있다. 무엇보다 입시 경쟁이 치열하다. 졸업 후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사교육비를 지불하면서 치열하게 입시 경쟁을 치르고 있다. 일자리 부족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학 입시제도를 아무리 고쳐도, 또 사교육 대책을 아무리 많이 내놓아도 별 소용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교육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저출산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2명을 기록했고 올해는 0.68명으로 더 떨어질 전망이다. 2022년 OECD 평균이 1.59명인데 그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다른 한 편으로 한국의 여성 고용률도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낮은 편이다. 30~54세의 여성 고용률은 2022년 현재 한국이 65.6%이고 OECD 평균은 77.2%로 무려 11.6%포인트의 격차가 존재한다. 이에 반해 같은 연령대 남성 고용률은 한국(89.9%)이 OECD 평균(88.9%)보다 오히려 약간 높다.

이처럼 출산율과 여성 고용률이 낮은 이유 중 하나도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한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자리의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에서는 법에 규정된 출산 전후 휴가나 육아 휴직을 사용하기 어렵다. 또한 경력 단절과 더불어 일자리의 질이 크게 하락한다. 여성가족부의 자료에 따르면 경력 단절 후 상용근로자의 비중은 하락하고 임시근로자나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의 비중은 상승한다. 따라서 많은 여성 근로자는 출산을 미루거나, 아니면 출산과 더불어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출산율도 낮아지고 여성 고용률도 낮아지는 것이다.

창업, 청년 일자리 근본 해결책 아냐

일각에서는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 방안으로서 청년들에게 창업을 권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에서나 창업해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신생기업 생존율은 1년 64%, 5년 34%, 7년 26%에 불과하다. 5년 이내에 3분의 2가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섣불리 창업했다가는 빚만 남기 쉽다. 물론 창업은 장려해야 하지만, 청년 일자리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김영희 디자이너

김영희 디자이너

청년의 눈높이를 낮추는 방법, 예컨대 대학 진학률을 낮추고 고졸 취업을 장려하는 방법이나 일반대학을 줄이고 전문대학을 늘리는 방법도 거론된다. 그러나 학부모와 학생은 고졸 학력보다 대졸 학력을, 그리고 전문대 학력보다 일반대 학력을 원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고등학교 졸업자의 대학 진학률이 70%에 달하며 대학 교육은 보편 교육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또 지금까지 많은 전문대가 일반대로 전환되면서 대학 졸업자 중 일반대 졸업자 비중은 2006년 51.4%에서 2022년 66.0%로 높아졌다. 이런 추세를 반전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또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기술 변화가 빨라지는 상황에서 대학 교육의 보편화나 일반대의 확대는 바람직한 측면이 있을 수 있고, 기술 교육은 평생 교육과 연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창업을 권하거나 눈높이를 낮추도록 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결국 청년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일이 우리가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일이라 판단된다. 이런 관점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여러 가지 규제의 개혁이다. 특히 디지털 전환과 더불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가 등장하고 시장 구조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낡은 규제로 인해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좋은 일자리의 창출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진영 논리 극복한 규제 개혁 필요

아산나눔재단에 따르면 세계 100대 유니콘 중 국내에서 사업을 할 수 있는 경우는 절반 가량에 불과하다. 승차 공유나 원격 의료, 공유 숙박 등 많은 사업은 한국에서 원천적으로 할 수 없거나 제한적으로만 할 수 있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인 전문직 서비스에서도 국내 규제가 너무 강해 온라인 기반의 서비스 제공이나 플랫폼을 통한 서비스 중개가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로톡’이 그러한 예이다. 이런 상황을 최대한 빨리 타개해야 한다.

과거 한국은 농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갖고 있었으나 이후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그리고 정보통신업으로 계속 영역을 확대해 오면서 빠른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변신이 가능할지에 대해 의구심이 적지 않다. 그동안 여러 가지 경제·사회적 이유로 도입된 규제가 쌓이고 쌓여 기업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에 더해 각종 이해관계가 얽히고 집단 간 가치론적 갈등이 덧붙여지면서 우리 경제가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예를 들어 규제 개혁은 무조건 친(親)재벌적이고 친(親)기업적이라 매도하며 규제 개혁에 반대하는 이들이 있다. 이러한 진영 논리를 극복해야 약간의 변화라도 가능해질 것이다.

‘친일자리 정책’에 우선순위 둬야

중소기업 보호 및 지원 정책도 재검토해야 한다. 이런 정책은 물론 타당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자칫 과도하게 이뤄질 경우 좋은 일자리 창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중소기업 중 생산성 높은 기업은 시장 점유율을 넓혀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성장해야 하며,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돼야 한다. 도태되는 기업이 없으면 성장하는 기업도 있을 수 없다. 예를 들어 각각 100명을 고용하는 중소기업이 세 곳 있다고 하자. 만일 이들이 합쳐져서 300인의 대기업이 된다면 ‘규모의 경제’ 이점을 살려 연구개발(R&D) 투자도 더 많이 하고 기업 내 업무도 전문화 할 가능성이 크다. 이를 통해 기업 생산성이 높아지면 결국 임금도 올라가고 근로 조건도 개선될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민간 R&D 투자의 대부분은 대기업이 담당하고 있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R&D 지출이 이스라엘 다음으로 큰 것은 이들 민간 대기업의 투자 때문이다.

정책에는 흔히 말하듯 ‘공짜 점심’이 없다. 선택이 필요하다. 만일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청년 일자리 문제 해소에 둔다면, 그것을 방해하는 다른 정책은 축소·폐지하거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이는 친기업적인 것도 아니고 반(反)기업적인 것도 아니다. ‘친일자리적’일 뿐이다. 지금처럼 이도 저도 아닌 혼란스러운 상태로 여러 정책을 각각 집행한다면 청년 일자리 문제와 사교육 문제, 저출산 문제 등 산적한 문제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기 어렵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