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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선데이] 연예기획사보다 못한 정당 공천 시스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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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2호 33면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자고 나면 쏟아져 나오는 정치인들의 망언에 국민들은 속이 뒤집힌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말했다거나 어딘가에 썼다는 한 줄 한 마디는 자라는 아이들의 눈과 귀를 가려야 할 정도다. 부산 지역구에 국민의힘 공천을 받았던 장예찬 전 최고위원은 서울시민의 의식과 교양 수준을 “일본인의 발톱의 때”와 비교했다. 국민의힘 대구 지역구에 공천됐던 도태우 변호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북한 개입 부분은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충실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도 후보로 추천됐다.

서울 지역구에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을 받았던 정봉주 전 의원은 “디엠지(DMZ)에 들어가서 경품을 내거는 거야. 발목 지뢰 밟는 사람들한테 목발 하나씩 주는 거야”라고 말했다니 귀가 의심스러웠다. 충남 지역구에 공천됐던 개혁신당 이기원 후보는 위안부 소녀상에 대해 “딸이나 손녀가 자기 어머니나 할머니가 강간당한 사실을 동네에 대자보 붙여놓고 역사를 기억하자고 하는 꼴”이라고 썼다.

과거 망언 “어린 시절 실수” 변명
“지금 나는 그때와 다르다” 반박
여론 악화되면 뒤늦게 공천 취소
연예지망생도 학폭 등 철저 검증

이들의 발언은 단순한 실언이 아니라 망언이다. 자신의 비분강개를 표현하기 위해 세련되지 못하거나 거친 표현을 쓴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우리 공동체의 근본적인 가치를 부정하고 조롱했으며, 우리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의 한 서린 상처를 후벼 파는 것이었다. 도저히 해서는 안 되고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문제가 되자 이들과 소속 정당은 ‘과거의 일’ 또는 ‘실수’라 치부하고 “그 때는 어렸다”거나 “정치 입문 전의 일”이란 등의 핑계를 댔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니 너그러이 봐 달라는 것이다. 단순한 실언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 기준이 되는 가치관이나 세계관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개인의 가치관은 이들이 말하는 ‘과거’ 시점보다 훨씬 더 앞선 청소년기에 형성된다는 사실이 무수한 과학적 연구로 입증돼 있다. 이러한 개인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언어란 매개를 통해서다.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분석한 연구들은 개인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등이 게시물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번에 공천이 취소된 한 후보가 20대 중반에 한 말을 두고 “워낙 어린 시절의 일”이라고 한 것은 사태를 모면하고자 하는 임기응변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뭉그적거리던 정당들은 국민 눈초리가 심상치 않자 ‘국민 눈높이’에 맞춘다며 뒤늦게 공천을 취소했다. 당초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한다”거나 “많은 세월이 지났다”며 은근슬쩍 넘어가려고 했다. 공천 과정에서 망언 사실을 몰랐다기보다는 공동체의 근본 가치를 흔드는 망언으로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심사위원들이 둔감한 탓으로 돌릴 일이 아니다. 지금의 정당 공천 시스템은 오히려 잠재적 후보들에게 망언을 하라고 조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소위 ‘디지털 소통 실적’이란 것이 소셜미디어나 유튜브에서 하는 발언으로 후보들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유튜브나 소셜미디어에서 주목받기 위해 강성 유튜브로 달려가 지지층의 입맛에 맞는 주장을 화끈하게 쏟아내면 공천에서 가산점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번에 줄줄이 공천 취소된 후보들의 공통점은 태극기집회와 유튜브,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강성 지지층의 인기를 얻은 사람들이란 점이다. 만약 그들이 최종적으로 정당의 국회의원 후보가 되었다면, 이는 정당의 시스템이 망언 후보를 만든 셈이 된다.

연예인들이 학창 시절 학교폭력 의혹으로 출연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거나 팀에서 퇴출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손해가 심각해지자 기획사들은 연습생과 신인의 과거를 철저히 검증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연예인 지망생에게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는지 물어보는 것은 물론이고 학생기록부와 소셜미디어 활동, 심지어 개인 메신저 대화 기록까지 샅샅이 들여다본다고 한다. 위기관리팀이나 전문업체를 통해 소속 연습생에 대한 인성교육 프로그램 또한 실시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이 확산됨에 따라 연예인 지망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올바른 언어 습관과 소셜미디어 이용법을 가르치는 등 연예인 이전의 사람 교육에 정성을 쏟는다고 한다. 과거의 잘못된 언행이 열심히 쌓은 공든 탑을 한순간에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정당과 정치인들에게 연예계 시스템을 배우도록 추천한다.

이재국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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