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

산사태 나자 박정희 지시, 세계적 녹화사업 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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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경주·울산 동대봉산과 산림녹화

김정탁 노장사상가

김정탁 노장사상가

박정희 대통령이 재임 중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일까? 최빈국에 속한 우리나라를 20년 만에 중진국에 올려놓아 지금은 세계 10위권 경제를 자랑하니까 당연히 경제발전이다. 그러나 경제발전을 위해 치른 희생이 만만치 않다. 자유를 크게 제한받은 데다 목표 지상주의로 인한 부작용까지 있어 경제발전과 관련한 공에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모든 국민이 동의하는 업적이 있을 텐데 그건 산을 푸르게 한 일이 아닐까. 한때 우리 산에는 나무가 없어 대개가 민둥산이었다. 이제는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녹색을 자랑하므로 이는 전적으로 박 대통령의 공이다.

10년간 30억 그루 전 국토에 심어
민둥산 탈바꿈 박정희 최대 치적

담당관 고건, 철근 사방법 채택
박정희 눈에 들고 총리 두 번 지내

국제회의서 비결 문의 쏟아지자
산림청 폐지 없던 일로 하기도

동대봉산 마사토, 단골 산사태 주범

경북 포항시 흥해읍 해안가에 조성된 사방기념공원. 동대봉산에 산사태가 났을 때 복구를 지시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사진 김정탁, 김석우]

경북 포항시 흥해읍 해안가에 조성된 사방기념공원. 동대봉산에 산사태가 났을 때 복구를 지시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사진 김정탁, 김석우]

전 국토가 푸르게 된 데는 동대봉산의 산사태라는 계기가 있었다. 동대봉산은 경주 보문관광단지와 울산광역시 북구를 잇는 산줄기 중간에 넓게 퍼져있다. 1972년 이 지역에 폭우가 쏟아져서 산사태가 크게 났다. 박 대통령이 현장을 직접 방문해 토사가 흘러내려 엉망이 된 동대봉산을 바라보고는 근본적 대책을 지시했다. 박 대통령이 이런 강력한 지시를 내린 데는 이 산의 토양이 평소에는 딱딱하게 굳지만, 비가 많이 오면 곤죽처럼 흘러내리는 마사토여서다. 그래서 식목일 때마다 나무를 심어도 장마철이 되면 심은 나무가 유실되는 상황이 매년 되풀이됐다.

또 다른 이유에서도 근본적 대책이 필요했다. 도쿄 하네다공항을 출발해 김포공항에 가려면 비행기 운항노선 상 동대봉산 위를 반드시 지난다. 그러면 나무가 없어 온통 황토색인 동대봉산과 마주한다. 동대봉산의 이런 황토색은 일본 상공을 지날 때 내려다보이는 울창한 숲의 푸르름과 너무 대조적이다. 게다가 당시 우리나라에는 국제선 항공편이 많지 않아 미국과 유럽에서 귀국하려면 대부분 하네다 공항을 거쳐서 들어와야 했다. 그러니 외국인 눈에 비친 한국의 첫인상은 벌거벗은 민둥산이다. 이 점이 박 대통령의 자존심을 건드려 확실한 복구를 지시하게 된 거다.

경주와 울산에 걸쳐져 있는 동대봉산의 한 봉우리의 사방사업 이전과 이후 비교 모습. [사진 김정탁, 김석우]

경주와 울산에 걸쳐져 있는 동대봉산의 한 봉우리의 사방사업 이전과 이후 비교 모습. [사진 김정탁, 김석우]

이에 따라 내무부(지금의 행정안전부)가 해당 도(경남·경북)를 제치고서 박 대통령의 지시를 직접 이행하게 되었다. 그래서 당시 내무부 새마을담당관이던 고건에게 이 일이 맡겨졌는데 여기가 관료로서 그의 신화가 시작되는 분수령이다. 그가 박 대통령의 지시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자 30대에 전남 지사에 발탁되더니 그 후 농수산부·교통부·내무부 장관을 거쳐서 서울시장과 국무총리를 두 번씩 지내는 관운을 누리게 되었다. 공무원으로서 이런 화려한 경력은 거의 전무후무한데 산림녹화 사업이 뜻밖에 이런 행운을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이런 행운은 부산의 한 전문대 토목과 교수의 예기치 않은 방문에서 비롯된다. 고건이 산사태 현장에 내려갔을 때 그가 묵은 경주의 한 여관에 해당 교수가 찾아와 동대봉산과 같은 마사토에선 일반 사방(砂防) 방식이 아니라 철근을 심는 콘크리트 방식으로 사방사업을 해 수로를 터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방식대로 하니까 정말로 흙이 흘러내리지 않아 심었던 묘목도 잘 자라나 10년 넘게 되풀이되던 실패가 마무리되었다. 동대봉산의 사방사업이 성공해 산이 푸르게 되자 박 대통령은 전 국토를 푸르게 하는 사업에 곧바로 착수했다. 그 실무 책임도 고건에게 떨어졌다.

고건 부친, 형제에게 갹출해 아들 판공비

포항시 흥해읍 사방기념공원 건물 전경. [사진 김정탁, 김석우]

포항시 흥해읍 사방기념공원 건물 전경. [사진 김정탁, 김석우]

참고로 고건의 부친은 한국 철학계 원로로서 서울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고형곤 박사다. 그는 아들이 젊은 나이에 도지사가 되자 판공비가 부족해 부정한 돈을 탐낼까 걱정돼 판공비 보조 명목으로 형제들에게 돈을 갹출해서 매달 보냈던 분이다. 고건이 관료로서 청렴의 아이콘이 된 건 부친의 보이지 않는 이런 헌신 탓이다. 그런데 고형곤 박사가 철학과가 아니라 이리농고 임학과를 졸업했으니 산림녹화와 고건과의 인연은 이미 부친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상상해본다.

박 대통령은 고건에게 자신이 주재하는 월례 경제동향 보고회의에 동대봉산 사방사업의 성공 사례를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당시 부이사관에 불과했던 고건에게 이런 큰 회의 보고는 엄청난 기회이자 동시에 압박이었는데 그만큼 박 대통령이 이 사업을 중요하게 여겨서다. 곧이어 범정부 차원에서 ‘국토조림녹화 10개년 계획’이 수립되었고, 이 계획에 따라 산림청은 한동안 농수산부에서 내무부로 소관이 바뀌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 국토조림녹화 계획이 빠짐없이 보고되었다.

1974년 4월 5일 경기도 양주군 백봉산(지금은 남양주시에 위치)에서 열린 식목일 기념행사에서 박 대통령은 “우리 후손들로부터 우리 조상이 10년 동안 고생해서 울창한 산림을 만들었다는 소리를 듣도록 합시다”라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매년 3억 그루의 묘목이 10년 동안 전 국토에 심어졌다. 그러니 총 30억 그루의 묘목이 국토를 푸르게 하는데 동원된 셈이다. 이런 엄청난 양의 묘목은 각 마을에서 재배됐고, 정부가 이를 구매했다. 그렇지만 묘목 심는 일은 주민들의 몫이 돼 대대적인 국민 식수 운동이 전국에서 벌어졌다. 그 결과 우리 국토가 지금처럼 푸르게 되었다.

윤치호(1865~1945)는 자신의 일기에 ‘나무만 보면 부엌 아궁이를 생각하고, 그 나무를 자르지 않으면 행복해하지 않은 조선 사람들에게 질려 버렸다. 산을 벌거숭이로 만들고, 아름다운 꽃을 잘라버리는 무자비한 손에 혐오감을 느낀다’라고 토로했다. 우리 선조들은 당장에 필요한 땔감을 구하기 위해 산의 나무를 마구 벤 게 사실이다. 그래서 비가 많이 오면 산에서 흘러내린 물로 인해 식량 생산까지 차질을 빚었다. 북한이 한때 심각한 식량난을 겪은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도 과거에는 북한 주민이 겪은 비극을 되풀이했을 텐데 1974년 식목일 선언이 이를 마감하는 전기가 되었다.

한편 박 대통령의 나무 사랑은 각별했다. 한 예로 구미시청 입구의 길게 굽은 길을 들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에서 나와 구미시청에 가려면 새마을로와 송정대로를 각각 이용해야 하는데 이 길들이 직각으로 연결되었으면 거리를 단축해서 더 빨리 갈 수 있다. 그런데 새마을로를 크게 우회시켜 송정대로와 연결되게 만들었다.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구미시청 앞의 큰 소나무 단지가 직각으로 연결된 길로 인해 훼손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다. 이 소나무 단지가 박 대통령이 초등학교 시절 등하교 때 나무에 올라타 밥 지을 때 나오는 굴뚝의 연기를 부러워하며 바라봤다는 곳이다.

유엔도 최단 기간 녹화국 선정

박정희 대통령이 초등학교 시절 걸어 다니던 구미시청 앞의 소나무 숲. [사진 김정탁, 김석우]

박정희 대통령이 초등학교 시절 걸어 다니던 구미시청 앞의 소나무 숲. [사진 김정탁, 김석우]

산림녹화 사업의 성공으로 마침내 우리나라는 금수강산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도 한국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개발도상국 중 최단기간에 산림녹화에 성공한 국가로 선정했다. 그래서 독일이 세계대전 이전에 인공조림에 성공한 나라라면 한국은 세계대전 이후에 성공한 나라이다. 그런데 독일은 거의 구릉지라 조림이 쉬웠던 반면 한국은 조림이 어려운 산악지대가 대부분이라 산림녹화 사업의 성공이 더욱 빛난다. 게다가 지금 우리나라는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어 산림녹화 사업의 성공이 기후변화에 미리 대응하는 효과까지 지닌다.

그런데 산림청이 한때 정부조직에서 없어질 뻔했다. 노태우 정부 때 정부 부처 간소화를 위해 행정개혁위원회가 설치되었는데 산림청이 첫 번째 폐지 대상으로 고려되었다. 이때 위원회 책임자였던 신현확 전 총리가 한 국제회의에 참석했다가 많은 개발도상국 지도자들로부터 한국에서 산림녹화가 어떻게 성공했는지에 관한 자료를 간곡히 부탁받고는 태도를 바꾼 덕에 산림청이 다시 살아났다는 일화가 있다.

동대봉산은 지금 유수의 관광지로 다시 태어났다. 그래서 찻집도 많고 정상에는 고급 빌라 단지까지 있다. 게다가 이곳 정상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동해가 웅장하게 펼쳐지고, 가을에는 억새 풀 물결이 은빛을 반짝거리며 빛난다. 이 은빛 물결 가득한 억새 풀숲 사이로 난 좁은 길에 들어서면 내가 걷는지 흔들리는지 모를 정도로 황홀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데 한때는 산사태로 나무가 자라지 못해 골칫덩이였으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김정탁 노장사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