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에버라드 칼럼

북한에서 벌어지는 몇 가지 기이한 움직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북한에서 최근 두 가지 기이한 일이 있었다. 첫째, 북한 나선과 러시아 보스토치니를 오가며 북한의 탄약을 러시아에 공급하던 선박 운항이 지난 10일 중단됐다. 물론 철로나 육상으로도 탄약 운송이 가능하니 선박 운항 중단만으로 북한 무기의 러시아 공급이 완전히 중단됐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공급량이 줄어든 것은 확실해 보인다. 북한이 러시아로 공급하려던 무기 비축고가 바닥난 것일까. 만약 그 이유 때문이라면 러시아의 대북 지원도 조만간 줄어들거나 중단될 수 있다.

북한산 무기의 러시아 공급 급감
품질 문제라면 북·러 경색 신호
유럽 등과 관계개선 희망 징후도

에버라드 칼럼

에버라드 칼럼

그런데 혹시 무기의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였다면 어떨까. 러시아 무기 블로그에 따르면 북한이 공급한 탄약이 포신 내부에서 폭발해 무기를 못 쓰게 되고 군인의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측에 따르면 품질 문제는 북한 미사일도 예외가 아니다.

만약 품질 문제로 러시아가 북한의 무기 공급을 중단한 것이라면 북한에 큰 문제다. 무기 품질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없어서다. 어떤 이유에서든 운송 중단은 북·러 관계의 경색을 의미할 수 있다. 지난 1월 북·러는 푸틴 대통령의 방북을 논의했지만, 추가로 언급이 없었다. 양국 관계 경색으로 잠정 중단된 것은 아닐까. 나선과 보스토치니 사이의 선박 운항이 계속 지지부진하고, 북한산 미사일의 오작동이 이어진다면 그것은 북·러 관계 허니문이 끝났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기이한 현상은 12개 국가가 참여해 지난 14일 끝난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 훈련과 15일 종료한 한·미 공군의 실전 사격 훈련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다. 한반도 연합 군사 훈련에 북한은 늘 미사일 발사로 대응해 왔고 장거리 목표물에 대한 핵탄두 미사일 역량을 과시했다. 지난해엔 한·미 군사 훈련에 대응해 최소 10기의 미사일을 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한 차례 발사했다. 이번에는 ‘한·미 연합군의 광란적인 전쟁 연습’을 부각하면서 동시에 북한군이 인민의 복리 증진을 위한 경제건설에 대규모 군병력이 투입된 장면을 대비시켰다. (※북한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의 방한을 하루 앞둔 지난 18일에 초대형 방사포 발사 시험을 했다.)

북한이 주요 우방국 이외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는 징후도 있다. 지금까지는 중국·러시아·몽골 정도만 평양 주재 대사관에 신규 발령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난 2월 독일 외교부와 스웨덴 대사가 평양에 들어가 대사관 시설을 점검했다. 향후 대사관 재개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지난해 9월 김정은의 러시아 극동 방문 이후 북한이 줄곧 추진해 온 강경한 대외 정책은 변함이 없다. 대남 강경 노선의 후퇴나 북·미 관계 재개 신호도 전혀 없다. 그러나 우방국이 아닌 국가들과의 적대적 관계를 약화하려는 북한의 대외 관계 변화를 예상해 볼 수는 있다.

만약 그런 변화가 있다면 아마도 내부 경제에 대한 북한 정권의 걱정 때문일 것이다. 2020년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에서 주민의 경제적 안녕 달성에 실패했음을 김정은이 인정한 뒤 3년이 흘렀다. 그 이후에도 김정은은 문제가 지속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러 관계 경색은 북한 정권에 더 큰 골칫거리를 안겨준다. 러시아의 석유와 곡물 지원이 없으면 북한의 경제 상황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고, 주민의 비참한 상황도 더 악화할 것이다. 북한 정권은 돈이 되는 길이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다.

이는 호재이자 악재이다. 사이버 약탈이 심해지고 군사 도발을 통한 북한의 공갈·협박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북한이 외국인 관광객에게 문을 다시 열 가능성은 호재다. 지난 2월 러시아 관광객 100여명이 북한을 방문했고, 중국 정부가 허가하면 러시아보다 규모도 크고 수익성이 더 좋은 중국 관광객도 다시 받아들일 수 있다. 오랫동안 북한에 들어가지 못했던 유엔 등 국제 원조 기구 관계자의 재입국이 허가될 수도 있다. 코로나19 이후 문을 꽁꽁 걸어 잠갔던 북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외부 세계가 들여다볼 기회가 될 것이다. 물론 아직 축배를 들기엔 이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