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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병훈의 마켓 나우

국제협력 확대 절실한 파운드리·팹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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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

반도체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쟁국들의 필승전략이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미국은 제조기업 리쇼어링을 기치로 차세대기술과 제조기술을 모두 선점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은 반도체 자체 생산능력을 확대하려고 전방위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대만은 파운드리 산업에서 누리고 있는 절대적 강세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미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고, 언제든지 중국으로 확장이 가능하도록 준비한다. 일본은 대만·미국과 협력해 자국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을 강화하면서, 반도체 제조 기업의 부활을 노린다. 유럽은 역내 반도체 자급률을 높이고 특화된 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태세다. 이처럼 경쟁국들은 반도체 산업 내에서 현재의 위치에 따라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다.

대만 TSMC의 일본 구마모토 공장. [사진 김현예 특파원]

대만 TSMC의 일본 구마모토 공장. [사진 김현예 특파원]

비슷한 분석수준을 적용해 보면, 우리나라는 중국, 미국-일본 연합세력 등의 맹렬한 추격을 뿌리치고, 메모리 부문의 제조 경쟁력을 확고하게 지키면서, 파운드리 또는 팹리스 부문에서 교두보를 만들어야 한다. 파운드리와 팹리스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약자라는 점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적절한 전략을 수립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메모리에서 1위라고 해서 새로운 분야에서 섣부른 1위 전략을 추구하면 제 풀에 지치기 쉽다. 약자가 강자를 상대하는 방법은 ‘약자끼리 연합하기’와 ‘강자와 연계하기’가 있다. 파운드리는 ‘한국-미국 연합’ 또는 ‘한국-대만 연계’가 필요했다. SK하이닉스는 TSMC와 협력하기로 했는데, 자사의 강점분야를 활용해서 TSMC와 연계한 현명한 전략이다.

팹리스는 관련 기업들의 규모나 시장을 보면 전략적으로는 중국과 협력해야 하는데, 미국의 봉쇄정책으로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국내 기업들은 미국 팹리스 강자들과 관계설정을 잘해야 한다. 오픈AI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생태계의 일익을 담당하거나, 구글·메타 등 제조기반이 미흡한 팹리스와 협력이 가능한 수준으로 덩치를 키워야 한다.

최근 국내 뉴스에 인공지능 반도체 분야에서 우수한 연구결과가 자주 보고되고 있는데, 작은 성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일관된 전략이 필요하다. 과감한 인수합병을 통해 글로벌 경쟁 체계 내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역량을 가진 팹리스 기업을 만들어내야 한다. 외부에 공표된 내용은 없지만, 기업 간에는 활발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반도체 세계대전의 혼란한 판세 속에서 인텔·엔비디아 등 반도체 선도기업의 리더들은 능동적으로 회사의 비전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합종연횡의 주체로서 뛰어다니고 있다.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 리더들의 글로벌 전략과 비전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병훈 포스텍 반도체공학과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