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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로 빚는 한산소곡주, 그 감칠맛에 취하는 줄도 몰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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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1호 21면

맛난 음식, 맛난 우리술

한산소곡주에 애정을 갖고 있는 김영찬 사장. [사진 이승훈]

한산소곡주에 애정을 갖고 있는 김영찬 사장. [사진 이승훈]

한산소곡주는 옛 한산 지역인 지금의 충남 서천군 한산·화양·기산·마산 지역에서 생산되는 소곡주로 2021년 지리적표시 제110호로 고창 복분자주, 진도 홍주에 이어 세 번째로 등록된 전통주다. 타지역에서 이 상표 사용은 금지돼 있고 재료도 이 지역 재료만을 사용해야 한다. 한산소곡주를 상업양조로서 처음 면허를 받아 정식 판매한 우희열 명인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와 식품명인 지정을 받았다. 소곡주(小麯酒)란 ‘누룩을 적게 사용해 빚은 술’이란 뜻에서 유래한 술 이름이다.

지금도 이 지역에서 한산소곡주를 빚는 농가는 200호가 훌쩍 넘고 동명의 술을 빚는 양조장만 70곳이 넘는다. 다른 지역에 유명 전통주가 있다 해도 한산소곡주처럼 해당 지역민들이 가가호호 생활 속에서 빚고 마시고 판매까지 하는 곳은 사실상 거의 남아있지 않다.

멥쌀·국화·콩 등 추가, 집안마다 개성 뽐내

한산소곡주는 찹쌀을 기본으로 한 전통 청주다. 이양주 또는 삼양주 기법을 사용하는 중양주로 두세 번에 걸쳐 재료를 나눠 빚는 고급스러운 방식으로 술을 만든다. 찹쌀 외에 멥쌀, 국화, 콩, 고추 등을 넣어 집안에 전해진 레시피에 따라 비슷하면서도 각자 개성 있는 술을 빚는다. 이 다양성이 앞으로 한산소곡주 발전에 큰 장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찹쌀을 베이스로 하는 전통 청주인 한산소곡주는 양조장마다 조금씩 다른 개성을 갖고 있다.

찹쌀을 베이스로 하는 전통 청주인 한산소곡주는 양조장마다 조금씩 다른 개성을 갖고 있다.

이 술은 무척 단 편이다. 술 색깔은 노오랗고 심지어 살짝 끈적임까지 있다. ‘앉은뱅이술’이란 별칭이 있을 만큼 알코올 도수는 16~18도 정도로 요즘 일반 소주보다 높은 편이다. 술의 단맛은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특히 일정 레벨 이상의 술로 평가받는 데 단맛은 종종 단점이 되곤 한다. 그런데 한산소곡주에는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매력 포인트가 있다. 바로 감칠맛! 한산소곡주를 잘 숙성하면 단맛은 다소 감소하고 감칠맛이 살아난다. 필자의 수백 번에 걸친 음주 실험 결과다. 그래서 간간한 스타일의 우리 한식과 한산소곡주의 감칠맛은 꽤 매력적인 조합을 이룬다.

한산소곡주를 정식 생산하는 양조장은 현재 70여 곳에 달하지만 최초 면허를 받아 규모화를 이룬 우희열 명인의 집안 외 생산자들은 아직 그 규모가 매우 영세하다. 특히 한산소곡주의 매력은 살균하지 않은 생주에서 그 매력이 더욱 극대화 되는데 유통상의 문제로 서울을 비롯한 타지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술은 살균주다. 한산 지역에 방문해 맛봤던 술맛이 타지에선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면 살균 여부가 이유일 수 있다.

필자도 서울에서 한산소곡주를 접할 때마다 그 점이 항상 아쉬웠는데 4년 전 지인의 추천으로 서울 영등포전통시장에 위치한 술집 ‘해송’에 방문했다가 경천동지할 한산소곡주를 접했다. ‘아니, 한산에서 마시는 한산소곡주보다 더 한산소곡주스럽잖아?’ 역시나, 이곳의 김영찬 사장은 한산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다녔고, 지역에서 술 만드는 분들과 호형호제 하는 한산 토박이다. 젊은 시절 서울로 올라와 군 제대 후 1985년부터 ‘스시맨’으로 여러 업장을 거쳤고, 2002년 전라도 광주 출신 아내와 함께 영등포전통시장 지금 자리에 ‘해송’을 차렸다.

김영찬 사장은 일식을 베이스로 경력을 쌓았지만 해송의 음식에는 한식 요소가 많이 결합돼 있다. 농어·방어·광어·참돔 등 다양한 어종을 일식 스타일로 잘 숙성해서 회로 내지만 매우 두툼하고 투박하게 썰어내고, 횟감 생선을 잘 말려서 소금 간을 한 다음 이를 구이·찜 등 여러 한식 요리를 만든다. 맡김차림(오마카세)을 주문해 보면 계절에 따라 식재료 상태에 따라 고추장에 버무리기도 하고, 간장에 조리기도 하는 등 일식과 한식의 장점을 잘 취하고 적당히 버무린 김영찬 사장의 20년 내공과 재래시장다운 푸짐함, 가성비와 인심에 놀라게 된다.

물론 음식만 괜찮았다면 이 지면에서 굳이 해송을 다룰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전술했듯 해송의 김영찬 사장은 한산 출신이고, 평생 고향의 술을 자연스럽게 향유해왔다. 때문에 자연스레 본인 업장에서도 한산소곡주를 취급하고 싶어 오래 고민했고, 결국 선택한 브랜드가 바로 유성희 대표의 ‘한산항아리소곡주’다. 유 대표와는 어릴적부터 고향 동갑내기 친구였고 무엇보다 다양하게 비교 테스트해본 결과, 본인의 음식과 한산항아리소곡주가 가장 잘 어울렸단다.

‘해송’선 6개월 숙성 한산항아리소곡주

‘해송’에선 일식과 한식의 장점을 잘 버무린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사진 이승훈]

‘해송’에선 일식과 한식의 장점을 잘 버무린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사진 이승훈]

더욱이 김영찬 사장은 납품받은 술을 그대로 판매하는 수준을 넘어, 살균주가 아닌 생주를 다루면 더 맛이 좋다는 점과 이를 저온 장기숙성하면 단맛은 살짝 빠지고 감칠맛이 강화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술을 양조장에서 충분히 저온숙성 후 판매하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양조장에서 드는 시간과 비용이 상승한다. 무엇보다 효모가 살아 있어 병내발효가 진행되는 생주가 1년의 유통기한 동안 여러 경로로 유통되면서 과숙성으로 품질변화, 포장파손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때문에 해송에서는 한산소곡주를 바로 판매하지 않고, 냉장고 깊숙이 최소 6개월 이상 보관해두고 마치 김치가 잘 숙성되어 맛날 때 꺼내 먹듯 감칠맛이 정점에 이를 때 손님들에게 내놓는다. 양조에 대한 지식이 많은 분은 아니지만 평생 경험에서 비롯된 상업양조와 우리 전통주의 꽃인 가양주의 장점을 잘 알고 절묘한 포인트까지 터득한 분이다.

해송의 한산소곡주 판매에서 또 인상적인 부분은 고향의 술을 알리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전통주가 유행하는 요즘, 사실 전국에서 생산되는 지역특성 강한 전통주가 정작 현지에선 소주나 맥주에 밀려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로컬 식재료와 음식들이 주목받지만 술은 예외인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서울에 있는 부산식당에 부산 술이 잘 없고 광주식당에서 광주 술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산 출신으로 서울에서 한산술을 알리려 노력해온 김영찬 사장 같은 이들이 더 늘어난다면 포항 과메기, 흑산도 홍어회가 도시 사람들에게도 익숙해진 것처럼 전통주도 더 주목받고 알려질 수 있지 않을까 소망해본다.

이승훈 전통주전문가 book@urisool.com 전통주를 마시고 가르치고 알리고 연결해주는 전통주 업계 대표 열혈일꾼. 사단법인 한국막걸리협회 초대 사무국장을 지냈고, 국내 최대규모 전통주전문점 ‘백곰막걸리’를 운영했다. 현재 경희사이버대학교 외식조리경영학부 겸임교수를 비롯해 막걸리학교, 한식진흥원 등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전통주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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