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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컷 cut

이토록 ‘실리적인 사랑’이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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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영화 ‘가여운 것들’의 주인공은 성인의 몸에 유아의 뇌를 지닌 ‘여자 프랑켄슈타인’ 벨라(엠마 스톤)다. 영화는 벨라가 비척거리며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동작이 어색하고 서투르지만 그녀의 지능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그러던 어느 날 벨라는 충직한 약혼자 맥스를 뒤로 하고 바람둥이 던컨과 여행을 떠난다. “같이 가면 재미있을 거 같아.” 그녀의 여행은 성적인 호기심에서 지적인 관심으로 이어진다. (※약간의 스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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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 장면만 이야기하고자 한다. 벨라가 대담한 성적 일탈에 진지한 세상 공부까지 마치고 돌아온 이후의 상황이다. 그녀는 맥스에게 청혼을 하고 맥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 대목까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흐름이다. 그런데, 맥스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벨라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성병 검사 했나요?” 그러자 벨라가 웃으며 답한다. “할께요. 난 이렇게 실리적인 사랑(practical love)이 좋아요.”

맥스는 벨라의 과거를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힐난한 게 아니다. ‘이제부터 당신과 건강한 사랑을 하고 싶다’는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그렇다면 벨라가 말한 ‘실리적인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어제가 아닌 내일을 향하는 사랑,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타박하거나 속박하지 않는 사랑, 상대의 성장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 허위의식에 찌들지 않은 사랑을 말하는 게 아닐까.

어디 사랑뿐이랴. 우리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그릇된 틀 안에 갇혀 살고 있지 않은가. 시큼한 고정관념으로 남들을 재단하고 있지 않은가. 궁금함도, 역겨움도, 도전하는 법도 잊은 채 지질하게 쪼그라들고 있지 않은가. 실제의 삶을 어떻게 보고, 듣고, 만끽하는지 잊어가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가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실리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인지 모른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